[정선우의 영화 다시보기] 짧은 사랑이었기에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017): 제목은 무서워도, 영화는 따뜻하니까

 

 

“아니, 이런 흔한 말로는 부족하겠지. 네가 싫어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영화 주인공인 사쿠라의 대사 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제목은 어딘가 괴기스러우면서도 내 뇌 어딘가에 매우 강렬하게 박혔다. 아직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일단 제목만 들어보면 무슨 B급 영화처럼 잔인한 살인마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오는 작지만,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여학생의 모습을 볼 때 제목과 내용이 정말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참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며, 이야기가 다뤄지는 시간적 배경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진행된다. 영화는 여학생 야마우치 사쿠라와 ‘나’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주로 다룬다. ‘나’는 학교에서 인기도 없고 쥐 죽은 듯이 살아가는 소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루저’ 와도 같은 존재이다. 반면 사쿠라는 ‘나’와는 다르게 인기도 많고 친구도 많다. 둘은 같은 반에 있으면서 쉽사리 만나기 힘든 존재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사쿠라에게 크나큰 시련이 다가오게 된다. 췌장암이다. 그리고 ‘나’는 사쿠라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암이라는 시련은 두 존재를 이어주는 계기가 된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사쿠라에게 남은 시간이 없음을 관객들도 서서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나’의 모습을 통해 어렴풋이, 그러나 ‘내’가 끝내 부정하고픈 현실을 관객들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사쿠라의 죽음은 둘의 짧은 사랑, 아니 사랑까지도 아니었을 수 있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더욱더 슬프고 간절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사쿠라의 사인이 예정된 암이 아니라 묻지마 살인범에 대한 살해임은 더욱 관객들은 허무하면서도 마음에서 응어리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서 사쿠라가 ‘나’에게 남긴 편지로 자신의 마음과 함께 “아니, 이런 흔한 말로는 부족하겠지. 네가 싫어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대사를 하는 장면은 짧지만 영화 전체를 꿰뚫는 마무리가 된다.

 

사쿠라는 유쾌하면서도 발랄한 고등학생이었고, ‘나’는 그런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아야만 해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유쾌한 그녀의 모습 뒤에는 죽음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압박감과 예상치 못한 사쿠라의 이른 죽음이 영화의 무게감을 극대화한다. 단순히 두 주인공의 사랑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시련을 통해서 관객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한마디로 ‘세상은 차별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멜로의 모습을 통해서 나타낸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정말로 인생의 숨겨진 진리를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췌장’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글쓴이의 지인 중 다수가 영화 제목을 보고 “뭐지... 공포 영화인가?”라는 말을 한 바 있고 글쓴이 자신 또한 그런 적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췌장은 장기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결국은 두 캐릭터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사랑 아닌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자체가 ‘삶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반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영화 제목 역시 비슷한 맥락을 적용한 것이다. 엽기적인 제목 뒤에 숨겨진 것은 그저 살아가고 싶은 마음과 순수한 사랑뿐이므로 결국은 제목부터 반전이니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도 영화 속에서 몇 가지 부각된다.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소설에서 다뤄진 일부 중요 장면이 몇 가지 묘사되지 않는다. 또 사쿠라 역의 배우 하마베 미나미가 스크린 속에서 짓는 억지스럽고 과장되어 보이는 미소는 은근히 관객의 신경이 쓰이는 요소 중 하나이다. (실제로 하마베 미나미는 자신의 성격과 사쿠라의 성격이 달라서 연기하기 어려웠다고 한 바 있다.)또한 사쿠라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데, 글쓴이는 영화는 시각적 예술이기에 최대한 표현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그저 관객의 생각에 맡기는 것이 더 이로울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오히려 관객이 생각한 ‘사쿠라의 죽음’에 혼란을 줄 수 있기에 영화의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게 만들고,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아쉬웠다.

 

결국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영화는 제목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영화의 제목이 괴기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괜찮다. 오히려 첫 장면을 보는 순간과 소녀가 느끼는 죽음의 무게를 공감하게 될 때 비로소 느껴지는, 뭔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저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오히려 눈물 닦을 휴지를 준비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그런 영화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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