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후의 영화 칼럼] 타율적 방관자

올해는 어느 해보다 코로나 19를 맞서면서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국가의 존재와 소중함이 크게 느껴지고 있는 한 해인 것 같다. 어느덧 75주년이 된 광복절을 맞으며 이날을 있게 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어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그려진 영화와 느낄 수 있었던 생각들을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쉰들러 리스트 - 1993, 스티븐 스필버그>, <안네의 일기 - 1959, 조지 스티븐스> 등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은 많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 2008, 마크 허만> 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독일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 말미에 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 영화는 독일 장교 집안의 가족 중 막내인 주인공 ‘브루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브루노 가족은 아버지의 파견으로 가족 모두가 베를린에서 독일 외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브루노는 우연히 자신의 방 창문에서 밖을 보았는데,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사람들이 농장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브루노는 그 농장에 몰래 가서 자신과 동갑인 친구를 사귀게 되고, 나중에 그 농장은 농장이 아닌 유대인들을 가두는 수용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브루노는 자신의 친구로부터 그의 아버지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후,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 수용소 안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브루노와 친구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껴서 학살장으로 이동하게 되어 결국 자신의 아버지가 관리하는 수용소에서 죽고 만다.

 

이러한 슬픈 결말이 예견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들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193개국의 UN 회원국 중 30개국이 아직도 유대인 민족이 다수인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랍 해방 운동가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고문과 암살을 합법화하는 국가적 범행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영화들을 통해 자국에 유리하도록 ‘영원히 핍박받는 자들의 보호막’으로 사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 인용 - https://newsis.com/view/?id=NISX20130327_0011953805 )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자신들이 겪은 독일로부터 겪은 만행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행동은 역사적인 상처의 치유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이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을 통해 아픈 역사를 마주하고 또 다른 아픈 비극의 가해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1961년 법정에 한 남자가 섰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음을 당한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를 고안해낸 '아돌프 아이히만' 이였다. 자신의 죄를 인정 하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제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자 관리자였을 뿐입니다.”

( 인용 - [네이버 지식백과] 생각 없이 죽음을 방관한 <그가 유죄인 이유> EBS 어린이 지식e, EBS )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고 타율적 방관자가 많아질수록, 그들이 속한 사회와 국가는 반복적인 상처로 얼룩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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