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의 무비칼럼1] 무비적무비적 - 칠드런 오브 맨

2006년에 만들어졌다고 믿어지지 않는 알폰소 쿠아론의 SF 명작


사실 '칠드런 오브 맨'을 감상한 후 이 영화가 2006년 제작된 영화라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 10년 전 제작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촬영, 각본, 연출 면에서 손색없고, 심지어 그 어떤 SF 장르의 영화보다도 현실적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2006년보다도 영화를 감상한 지금, 현재 상황과 더욱 맞아 떨어지는 영화 속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영화를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현재 세계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저출산, 난민 배척 문제를 진작부터 내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2006년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다. 당시 알폰소 쿠아론이 감독으로서 명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고, 주연 배우들 역시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결국 곧바로 DVD 시장으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이미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선 숨겨진 명작으로 취급되곤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2013년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한 '그래비티'가 엄청난 주목을 받으면서 그의 전작이었던 '칠드런 오브 맨' 또한 함께 주목받았고, 결국 2016년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었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임으로 인류가 더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2027년을 배경으로 한다. 세계가 혼란에 빠지며 대부분 국가의 정부들이 몰락하지만, 영국 정부는 살아남는다. 영국 정부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 난민, 이민자들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몇몇 단체들은 이러한 정부에 저항한다. 그중 피쉬단이라는 단체를 이끄는 줄리엔은 아들을 잃은 뒤 헤어져 지냈던 자신의 남편 테오를 찾아가 아이를 임신한 '키'라는 이민자 소녀를 무사히 '인류 프로젝트'라는 단체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허무주의에 빠져 살던 테오는 아내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인류의 희망을 실어 나르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이 영화가 SF 장르로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사태의 원인, 해결책을 찾는 것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작품은 인류가 임신하지 못한다는 메인 설정을 지니고 있지만 정작 인류가 왜 불임이 되었는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 가운데 아이를 임신한 '키'는 어떻게 임신할 수 있었는지, 아이의 아빠는 누구인지도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즉,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따로 있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과감히 불필요한 설정들을 제거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적인 상황과 더 잘 맞아떨어진다. 이민자들이 억압받는 상황은 자연스레 브렉시트를 비롯하여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이민자, 불법 체류자 문제가 떠오른다. 불임으로 인해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설정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또한, 문명과 문명, 종교와 종교가 서로 대립하는 상황도 보인다. 후반부에 난민 시위대와 정부군이 대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난민 시위대는 이슬람교도, 정부군은 기독교 신자들로 설정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두 집단 사이의 대립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아비규환은 같은 인류임에도 인종과 신앙의 차이로 인해 갈등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을 보는 것만 같다.



'칠드런 오브 맨'은 주인공 테오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로드무비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테오의 여정 속에서 테오의 가치관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한때 사회 운동가였던 테오는 아들을 잃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잃은 채 허무주의자가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여정 속에서 아내 줄리엔이 죽고,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제스퍼의 희생(사실상 제스퍼의 운명을 지켜보면서 테오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을 겪으며 테오는 점차 가치 있는 일에 투신하게 된다. 사실상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류의 희망을 잉태한 키를 무사히 인류 프로젝트의 '미래호'까지 데려다 주는 두 사람의 관계는 요셉과 마리아를 보는 듯하다. 결국 미래호로의 여정은 미래를 믿지 않던 테오가 미래를 믿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꽤나 감동을 주는 스토리 라인이다.



테오의 그러한 여정 속에서 서스펜스를 통해 관객이 긴장감을 유도하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결국 줄리엔을 죽인 것이 그녀의 방식에 불만을 가진 피쉬단 부하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안 테오가 키와 미리엄을 데리고 피쉬단의 은신처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데, 코앞에 적들을 두고 도망을 치려고 차에 몰래 탑승했으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차에서 내려 차를 밀어서 도망치게 되는데, 그 장면을 지켜보는 심정은 그야말로 아찔하다. 마치 내가 함께 도망치는 사람인 것처럼 함께 아슬아슬해 하며 금방이라도 적들에게 따라 잡힐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서스펜스를 활용하는 영화들은 많지만 이렇게 느린 서스펜스로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촬영의 부분에서 이 영화는 '그래비티', '레버넌트' 만큼이나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사실 '칠드런 오브 맨'을 포함한 세 작품의 촬영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촬영 감독이 동일 인물, 엠마누엘 루베스키라는 것이다. 엠마누엘 루베스키는 촬영 분야에선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아카데미 촬영상을 3년 연속 수상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촬영 감독이다. 특히 롱테이크 촬영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이 영화의 롱테이크는 개봉 전부터 유튜브에 공개되어 돌아다닐 정도로 유명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긴 롱테이크는 7분~8분 가량 이어진다. 즉 8분 동안 화면이 바뀌지 않고 한 대의 카메라의 촬영분만으로 상황을 담는 것이다. 보통 영화의 한 컷이 4.5초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길이다. 제이슨 본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컷을 짧게 잡으면 액션이 강조된다. 반대로 롱테이크로 촬영을 하게 되면 주인공을 둘러싼 아비규환의 상황이 더욱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 특히 후반부 시가전 롱테이크는 총격전이 난무하는 상황 속 필사적으로 키와 아기를 찾으려는 테오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잘 담겨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테오는 시가전 속에서 총을 단 한 번도 집어 들지 않는다. 하다못해 떨어져 있는 총을 주워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키와 아기를 찾는 데만 열중한다. 이러한 부분은 영화의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촬영 면에서 특이한 점은 모든 촬영이 핸드 헬드(handheld)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굳이 핸드 헬드로 촬영하지 않아도 되는 장면까지 핸드 헬드로 촬영이 되었다. 핸드 헬드는 관객이 영화에 사실성, 현실성을 느끼게 해주는 방법의 하나다.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테오의 여정을 담은 2027년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감독이 모든 면에서 섬세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스토리 설정, 시각 효과, 촬영 기법까지 작품에 현실성을 더해줌으로 인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고 문제의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관계 심지어는 짤막하게 등장하는 신문의 헤드라인, 벽에 적힌 낙서들까지도 의미를 부여해서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을 지어 놓았다. 사실 모든 걸 다 이야기하려면 리뷰가 엄청나게 길어질 뿐만 아니라, 필자 역시 지나친 것들이 많으므로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해 드리자면 우선 등장인물 테오와 키의 이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키는 듣자마자 'key'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모든 상황의 열쇠가 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주어진 이름이라는 느낌이 든다. 테오는 라틴어로 '신'이라는 뜻이다. 두 사람의 여정이 상당히 신화적인 부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한다. 테오의 아들 딜런의 이름도 의미가 있다. 딜런은 웨일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의 이름인데 또 다른 뜻은 거대한 파도라는 뜻이다. 결말 부에 다다르면 테오와 키가 물결이 이는 바다 위에서 보트를 타고 미래호를 향해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곳에서 키는 자신 아기의 이름을 딜런이라고 정한다. 아기의 이름과 두 사람이 위치한 환경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섬세함이 느껴진다.


테오와 키의 관계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 키가 마구간에서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장소 역시 마구간이다. 이런 설정들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이런 설정들의 경우 원작 소설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긴 하다. 원작자 P.D.제임스에게 박수를….)



사실 '칠드런 오브 맨'은 글로 쓰는 것보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영화가 전하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게 더 괜찮은 작품이다. 워낙 많은 레퍼런스들을 포함하고 있고,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어 글로 표현하는 데도 한계를 많이 느낀 첫 칼럼이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영화가 제작된 2006년보다 개봉된 2016년의 상황을 더 잘 보여주었다. IS의 무장테러,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의 득세,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등등. 영화가 끝나고 아이들이 뛰노는 웃음소리와 함께 띄워지는 영화의 제목 '칠드런 오브 맨'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세계 각 국가가 국익, 종교, 가치관을 떠나서 과연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칼럼소개: 영화 칼럼이 영화에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감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칼럼은 하나의 견해를 제시할 뿐 영화에 대한 실질적 감상은 여러분 개인의 몫입니다. 영화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비적무비적]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