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실의 언어칼럼 1] 세상을 깔끔하고 담백하게 사는 법?!

이중메시지 없는 세상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진실아, 아까 OO랑 얘기 신나게 하더라.” 

나는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대번에 숨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너 정말 신났겠구나.’가 아니라 ‘시험 기간인데 시끄러웠어.’의 의미였다. 슬쩍 “미안해, 많이 시끄러웠어?”라고 말하니 친구는 머쓱한 얼굴로 “어, 조금.”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 말이 전혀 다른 의미를 띠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나도 모르는 새 독심술을 배우기라도 한 걸까? 나 뿐만 아니라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이 말이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간파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부모님의 “지금 몇 시니?”라는 말. 과연 부모님이 진짜 물리적인 시간이 궁금해서 물어보신 걸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숨은 의미는 ‘너 공부 안 하니?’부터 ‘시간이 몇 시인데 안자니?’까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겉으로 드러나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언어 사용 방식을 ‘이중 속박 메시지’라고 한다. ‘이중 속박 메시지’란 1956년 베잇슨이라는 학자가 규명한 언어 사용 방식이다. <사회복지학사전>에 따르면 ‘의사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으로 단어, 목소리, 표정 혹은 언어적 메시지를 매우 복잡하고 모순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화자는 의도적으로 진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상반되는 내용의 메시지 속에 숨겨서 청자에게 전달한다. 청자는 받은 두 가지 메시지 중 어떤 것에 반응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이 오고 이것이 반복되면 상호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나의 경험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중 메시지의 사용이 심각하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퇴근하면 좋겠네!’ ,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나 요즘 살쪘지?’ , 부모가 자식에게 ‘참 잘했다!’ 라고 말하는 것 모두가 우리에겐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중 메시지의 사용에 익숙해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상대방의 말을 곱씹고, 혼란스런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며, 이로 인해 더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위해 우리는 이중 메시지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절대 나를 알 수 없으므로 나는 더 확실하게 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예'면 '예', '아니오'면 '아니오'로 내 분명한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상대방과 나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달라서 서로 맞추기가 힘들지만, 혼자는 살아갈 수 없기에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제각각인 생물체를 연결해주는 단 하나의 끈은 ‘언어’이고 ‘의사소통’이며 ‘이해’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태어난 도구를 제 용도에 맞게 써야 하지 않을까? “지금 몇 시니?”라는 질문에 “11시 45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중 메시지 없는 심플한 사회를 기대해본다.




칼럼소개 : 국어교사를 꿈꾸는 저는 언어의 힘이 무엇보다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우 올림픽에서 박상영 펜싱 선수가 할 수 있다.’ 라는 한 마디로 금메달을 거머쥔 것처럼 언어가 만들 수 있는 세상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언어의 힘, 올바른 언어사용 습관, 단어의 기원 등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이진실의 언어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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