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지의 영화칼럼 1] 직선적 공간에서 배양된 역동성

<밀정>,<부산행>,<설국열차> 인간이 타고 있는 삶의 열차를 스크린에 구현하다

직선은 명료하며 평범하다. 그러나 무한하다. 그 기점도 종점도 정해져 있지 않기에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자의적으로 설정하여 하나의 선분을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는 짧은 선분은 삶이라는 직선 전체를 포괄할 만큼의 감정적 파장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항상 화려한 배경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직선적으로 설정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제한된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열차는 직선의 운송수단이다. 그리고 여러 칸의 연결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목적을 지니고 그 안에 탑승한다. 좁은 공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갈등의 시작이 될 수도, 생존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밀정>, <부산행>, <설국열차>는 모두 열차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 속에 탑승한 인물들 그리고 사건의 전개에 역동성을 부여하였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경성행 열차에 탑승한 이들, 누군가는 폭탄을 옮겨야만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막아야만 한다. <밀정>에서 열차라는 공간은 다소 긴 러닝타임인 140분을 체감시간 90분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초반부터 중반까지 관객들은 스토리 상의 배경적인 이해와 더불어 여러 사건의 실마리를 은연중에 조금씩 얻게 된다. 지루할 수 있는 이러한 초반의 모든 영화적 설정은 열차 내부에서 복잡한 사건을 동시에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경성까지 가는 제한된 시간 동안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라는 폭이 좁고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우리는 개별적으로 등장할 때 보지 못했던 캐릭터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밀정’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하는 ‘우진’과 ‘우진’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야만 하는 ‘하시모토’,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정출’은 열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까지 각자의 사투를 벌인다.


그 과정이 영화의 다소 긴 서사구조를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긴장감을 주는 것은 ‘열차’가 모든 사건들을 엮는 매개적 장소로 기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행>, 부산이라는 목적지가 뚜렷하게 존재하지만, 그곳에 닿는 것은 그 자체로 난관이다. 달리는 열차 속에서 주인공 ‘석우’ 그리고 그의 딸 ‘수안’, 임산부 ‘성경’과 그의 남편 ‘상화’는 좀비들과 마지막까지 치열한 싸움을 이어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보이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계속 불리는 ‘수안’이 이외에는 이름을 지각하지도 못할 만큼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긴박한 상황은 좀비들의 움직임이 빠르게 설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달리는 KTX의 속력이 더해져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서양의 여러 작품에서 묘사되는 일반적인 좀비의 모습과는 다르게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좀비들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사소한 의문을 잠재운 것은 결국 열차라는 배경이다. 열차는 협소하므로 좀비와의 밀착된 액션을 가능하게 한다. 그와 동시에 열차의 속력과 밀폐성은 생존을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로써 작용하기도 하기에 영화 전반에서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국열차>는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의 직선 구조를 활용해 열차 내부의 권력구조를 명확하게 각인시킨다. 권력구조의 각인은 권력의 불변을 상징하는 듯 보이지만 열차는 선로라는 직선 위에 위치하기에 자연스럽게 꼬리 칸과 머리 칸은 평행 선상에 놓이게 된다. 결론적으로 평행하다고 볼 수 있는 위치적 여건은 꼬리 칸으로부터의 혁명을 일구기에 충분한 자양분이 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열차 이외에도 다른 운송수단이 충분히 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원작 만화에서도 영화에서도 이 작품은 ‘열차’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메시지를 지닌다. 수직적 구조를 나타내는 운송 수단이 등장했다면 꼬리 칸의 사람들은 머리 칸으로의 이동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승은 전진보다 상당한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시대적 배경도 영화가 갖는 핵심적 맥락도 모두 다른 세 작품이 너무나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열차’, 그리고 각각의 스토리를 실은 객차들을 잇는 이음새로 배우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밀정>은 일제 강점기, <부산행>은 현대, <설국열차>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기에 전체적 스토리라인에서는 어떠한 공통적인 속성도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인물들이 탑승한 기차 속의 분위기가 비릿한 인간의 냄새를 담고 이토록 선명하게 와 닿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 과거에도,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달라지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칼럼 소개 : 열차라는 공간적 속성이 영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속성을 짧은 시간 내에 드러내기에 열차만큼 적합한 공간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열차를 배경으로 한 세 영화를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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