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의 인문학칼럼 8] 중국 항일유적 탐방기 제 2장 - 가려져 있던 독립운동가

조이 루이스 쇼, 그리고 역사 왜곡의 현실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다. 우리는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정신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유관순 열사가 3·1 만세운동을 주도했지만, 전국 곳곳의 수많은 사람이 이 운동에 동조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독립운동가다. 단동에서 독립운동을 도와준 한 외국인이 있다.

 

 

 

바로 조지 루이스 쇼라는 아일랜드 계 영국인 기업인이다. 아일랜드 출신 조지 루이스 쇼는 아일랜드가 약 8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던 역사가 있어, 조국과 처지가 같은 한국을 동정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조선인의 망명 계획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륭양행은 그가 1919년 5월 중국 단동에 설립한 무역선박회사이다. 임시정부는 이곳에 비밀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을 두었다. 이륭양행 무역회사의 1층에는 무역 사업의 일을 했고, 2층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교통국에서 상해의 자금을 국내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중국과 국내를 연결해준 이륭양행의 역할이 컸다. 이륭양행에서는 독립운동가의 망명, 독립자금 모집, 무기 반입, 연통제 운영 등의 역할을 감당했다. 백범 김구도 3·1운동 직후에 단동에 도착하여 이륙양행의 배인 계림호를 타고 상해로 망명하였다. 정보가 누출되어 실패하기는 하였으나, 의친왕 이강의 망명 시도도 이륭양행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써준 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아픈 역사를 가진 외국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국적이지만, 같은 아픔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희생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1932년 11월 66세의 노인 이회영은 만주 군벌 장학량과 연대하여 일본군을 격파할 계획을 세우던 중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대련 수상경찰서에서 노인의 몸으로 고문을 받다가 여순 감옥으로 옮겨졌고, 더 모질고 혹독한 고문으로 운명했다. 바로 일본 정부의 특명 때문이었다. “일제의 한국병합의 전 과정을 잘 아는 이회영에게는 재판에 회부하지 말고 죽여라”

 

일제는 이회영이 여순 감옥에서 비참히 순국했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여객선에서 체포되어 취조 중 유치장 창살에 목메어 죽은 이상한 노인”이라는 거짓 보도를 유도하였다.

 

일제가 퍼뜨린 거짓보도 때문에 우리 후손들은 왜곡된 역사를 기억할 뻔했다. 이렇게 과거의 역사에 일제가 조작한 내용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예로 왜곡된 독도침탈의 역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작되고 왜곡된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주변 국가의 역사 왜곡과 독도 침탈에 관심을 두고 우리의 역사를 앞장서서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고,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질수록 과거 역사의 진실은 하나씩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일제에 의해 베일에 싸이고 사라져버렸던 순국열사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

 

칼럼소개: 사회의 현실, 문제점, 소식들을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전달하는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은 학생입니다. 학생의 시각에서 인문학을 색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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