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의 사회칼럼 9] <미국 여행기> What You Do Matters

“What you do matters.”-Holocaust memorial Museum

Holocaust Memorial Museum front

 

워싱턴의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에 있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사진 속 불타고 있는 시체들은 나를 입구 앞에서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그 순간 ‘What you do matters.’ 문구가 나를 붙잡았다. 고통스럽기에 더 기억해야 한다고, 더 행동해야한다고 외쳤다. 그렇게 나는 박물관에 첫 발을 디뎠다. 내부의 모든 사물, 영상, 사진들은 기억책임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했다. 무엇을 위해 기억해야 하며,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기억은 다시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할 때 비로소 질문하게 되고, 다르게 보인다. 나치도 생각이라는 부분으로 사람들을 세뇌시켰던 것과 같이 생각은 그 어떠한 수단보다 강하다. 나치는 라디오, 교육 등으로 자신의 사고를 사람들에게 세뇌시켰다. 어린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닌, 생각을 주입 당했다. 어른들에게는 라디오를 나눠줌으로서 하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세뇌는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를 기억할 수 없게 했다. 세뇌당한대로 생각하고, 삶을 살아갔다. 그 세뇌에는 책임이 없었다. 한 독일 군인이 유대인들의 학살에 동참하며, 동시에 이웃에게는 좋은 아저씨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세뇌의 힘이었다. 세뇌자체가 책임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 세계 1차 대전의 책임을 잊고, 책임을 전가시켰다. 나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생각으로 유대인들을 죽였다.

 

 

책임기억의 산물이다. 기억했기 때문에 책임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세기를 지나며 책임이 결여되었기에 사회는 세뇌에 몸을 맞기고, 때로는 의심하지 않음으로 희생이 번복되었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 기억하지 않았고, 기억하지 않음으로 책임은 전가되었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의 다른 말이다. 기억은 객관적인 사실, 그리고 여러 관점으로 보았을 때 비로소 사실을 잊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실을 배우기 위해서 나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단지 중에서 홀로코스트를 처음 오게 된 것 아닐까. 배운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 그리고 기억은 반응하고, 답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Holocaust Memorial Museum Wall

나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작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죽음은 나를, 우리를 반응하게 만들었다. 천장 끝까지 높이 쌓여져 있는 한 명, 한 명의 사진은 나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그들의 기억이 우리를 더 기억하게 만들었다. 수북히 쌓여있는 신발 앞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보고, 아는 것에 대해 행동하지 않은 나를 보고 말이다. 보고, 알게된 것을 외면한다면 더 이상의 기억도, 책임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알고, 나의 생각을 알았을 때 무엇을, 어떻게, 왜 기억할 것인지를, 그리고 책임지며 살아갈 것인지를 알아가게 된다. 이제 보고,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Now that you have seen, now that you know... What will you do?” -Holocaust Memori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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