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의 역사문화칼럼 11] 21세기에 만난 다산선생 (1부)

목민심서의 사회사상과 현대 사회복지정책 적용에 관하여

오늘날의 사회복지사상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기본 가치로 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역시 백성을 다스리는 기본을 추목(芻牧), 즉 백성을 먹이고 기르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목민의 본질이라 하였던 다산 정약용의 목민사상과 유사하다.
 
이처럼 전통사상에 기반 하면서 현대적 성격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현대 한국적 사회복지사상과 정책 적용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으로 대두된 부모와 자식 간의 학대와 싸움, 이웃 간의 단절, 노인 소외, 강력 범죄, 공동체 의식의 상실, 인구 문제 등을 완화시키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기제가 바로 사회복지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다산이 목민심서를 통하여 주장하고 있는 사회는 현대적 개념의 복지국가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현재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사회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여 목민심서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현대에 접목해 볼 수 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1)목민심서의 사상적, 시대적 배경과 내용, 2) 다양한 복지정책 분야와 목민정책의 현대적 의미 3)현대 사회복지에의 반영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 시간에는 목민심서의 사상적 배경과 이와 같은 사상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 그리고 목민심서에서 강조하는 내용에 대해서 다루어 보았다.
 
목민심서의 사상적, 시대적 배경
 
다산의 정신이나 주장을 한마디로 정의하며 ‘공렴’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급제 후 벼슬살이를 앞에 두고 국가와 사회, 백성을 위해 어떤 지위와 직책을 맡더라도 철저히 청렴하게 살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적은 시의 두 글자 ‘공렴’은 다산의 일생을 꿰뚫고 있는 사상이자 목민심서의 바탕이 된 사상이라 하겠다. (박석무, 2016)
 
이렇듯 ‘공렴’의 정신을 바탕으로 저술된 목민심서에서는 정치의 일선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어떻게 공무집행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는 목민관의 업무수행의 궁극적 목표가 결국 백성을 편안하게 함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가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 시대는 상당히 혼란기였고 후기로 갈수록 신분제의 붕괴가 가속화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과거제의 타락과 매관매직, 목민관의 비행과 향리들의 농간, 그리고 토호들의 특권 남용으로 인해 백성들이 심하게 시달렸다. 이를 두고 다산은 “조선은 어느 한 곳도 썩지 않은 곳이 없다.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라고 개탄하며 당시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다산의 생존 시기 국가 재정의 토대가 되는 삼정, 즉 전정과 군정 그리고 환곡의 문란이 극심하여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그 중 환곡과 군포제도가 가장 폐단을 일으켰다.
 
이러한 삼정의 문란은 지방관아의 서리, 심지어 목민관까지 가세하여 발생한 것으로 정약용은 그러한 목민관들을 도적이라 비난하면서 바로잡기를 촉구하였다. 이처럼 수령들이 본분을 잊은 채 사욕만을 추구하는 현실에 통탄하며 온전하게 백성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바로 목민관이 갖추어야 할 도리라는 점을 밝히고 수기치인에 힘써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다산은 공직생활의 경험이나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참담한 생활의 모습을 목격하며 사회적 모순의 극심함을 체험하였기에 군주나 목민관이 백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여 대민 정책과 구휼정책을 통해 질병, 재난으로 고통을 받는 불쌍한 백성들을 국가가 위로하며 구제할 것을 강조하였다. (금장태, 1999)
 
제2강 율기 편 ‘청심’에서도 ‘목민관이 청렴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으로 지목하여 마을을 지나갈 때 더러운 욕설이 높을 것이니 부끄러운 일이다.’는 구절을 통해 목민관에게 높은 도덕성의 요구와 더불어 백성 위에 군림, 지배, 착취할 수 없음에 주목하였다. (최성, 2010)
 
정약용은 이러한 재산상의 불평등, 빈곤, 기아, 자연재해, 사회적 약자의 생존문제 등을 사회문제로 인식하였고 그 원인을 사회구조적 책임인 낮은 생산력과 자연재해의 발생, 관리의 부패와 도덕성의 추락으로 보아 개인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지되, 국가 또한 백성의 생활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전통적으로 유교의식이 강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토록 민주적이고 근대적인 사상의 설파를 통해 목민관에게 철저한 도덕적 잣대와 청렴을 강하게 요구했던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다산의 애민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최초로 단순한 통치객체였던 ‘백성’을 정치주체로 격상시킨 것으로 근대적 성격의 정치사회로 가는 문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목민심서에서 강조하는 내용
 
목민심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는 믿음과 그런 백성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빈민, 장애인,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가정 형성의 유지를 도우며 세금의 감면으로 백성들의 삶의 질을 도모하는 등 사회복지 전반에 대한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목민심서는 18세기에 완성된 것이지만 21세기인 오늘날 복지사상의 기본지침과도 부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 재해와 그 대책
 
목민심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재해와 그 대책이며 이는 목민심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휼(恤)이란 구휼한다는 뜻으로 진황/진휼 (흉년에 빈민구휼)과 같이 기근에 대한 구제를 의미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정약용이 생존했을 당시 진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마땅한 의무였으나 재정이 고갈되어 조정은 이를 시행할 여력이 부족했다.
 
이에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애민 육조와 진황 육조에서 구휼에 대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흉년에 백성을 구하는 정치인 ‘황정’을 목민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로 규정하였다.
 
재해대책에 있어서는 백성의 구제나 재해의 예방과 같은 당위적이고 피상적인 언급에서부터 재해가 나기 전 구제식량의 비축이나 부유한 백성에게 재난 당한 백성을 돕도록 하는 일, 흉년일 때 산택의 금령을 해제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시행방법까지를 언급하였다.
 
2) 인권존중
 
다산이 살았던 조선후기 사회는 신분적 계층질서에 상당한 동요가 일어나는 동시에, 사회내의 신분적 갈등이 심하게 노출되던 시대였다.
 
다산은 당시 사회가 인재를 쓰는 데 얼마나 불평등하고 당파적 폐쇄성에 빠져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재주와 기능으로 인재를 뽑는 새로운 과거시험 제도의 설치로 문벌, 지방, 당파의 타파는 물론이고, 신분의 차별을 타파하여 서얼과 천민에 이르기까지 등용의 길을 열어주도록 요구하였다.
 
그는 인간이 하늘 앞에서 신분과 지위에 의해 차별되지 않는 신분 평등론을 주장하며 모든 인간을 평등한 이웃으로서 하늘 앞에 서게 하는 새로운 인간관의 제시를 통해 인권존중의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목민심서에서는 인권존중에 관한 조목들을 안민, 치안, 법률, 국방으로 구성하였다. 이는 목민심서가 조선시대에 백성의 인권을 존중하는 수단으로서 안민, 치안, 법률, 국방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김효건, 2014)
 
 
안민의 내용은 목민심서의 모든 조에 걸쳐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 중 특히 안민을 강조하는 부분은 형전5조 (금포, 횡포와 폭력 단속)이다. 안민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주로 호강, 즉 귀척(권문세가), 내신(임금을 가까이서 섬기던 신하), 토호(지방세력가), 간리(간사한 관리)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호강을 엄격히 다스렸을 때 목민관은 백성을 보호할 수 있고 백성은 편안해 지는 것이라 하였다. (한양원,2009)
 
치안에 관한 내용으로는 죄를 지은 자는 스스로 새로워져 각각 그 직업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 하였고, 생계 형 도둑에 대해서는 관용으로 관대히 대하는 것을 치안을 회복할 방법으로 보았다.
 
법 집행에 관해서는 목민관이 고심하고 신중해야 할 가장 큰 책임과 의무를 형벌의 부과가 아닌 백성의 교화로 보았다. ‘형전’ 2조의 ‘단옥’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면 집을 털고 마을을 족쳐서 혹독하고 각박한 짓을 일삼지 말아야 하며 혹여 목민관이 죄를 벌함에 있어 의심 나는 옥사를 밝히기 어려우면 용서하는 것이 덕의 기본이라 하여 힘없고 무고한 백성을 보호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재판을 담당하는 목민관이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고 소중히 여겨야 함을 역설하며, 목민관의 직분이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이니만큼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억울함이 없도록 함이 목민관의 마땅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였다.
 
3) 교육
 
다산은 교육을 통해 인간 상호간에 지켜야 할 윤리를 가르치고 미풍양속을 권장하여 사회 문제의 발생 억제와 더불어 인권존중을 통한 백성 스스로의 존엄성의 자각을 사회정책의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다산은 백성에게 예의를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알게 한 뒤에라야 그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하였고, 예전 육조 조항에 ‘교민’을 넣어 지방관이 수행해야 하는 필수 행정과제로 삼았다. 이처럼 다산은 교화와 교민이라는 것이 현대적 의미의 ‘교육’뿐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모두 교민이라 보았다.
 
4) ‘삼정’의 문란
 
세금과 공납, 역과 환곡, 첨정에서 군역 등 백성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잘못된 제도를 신랄히 비판하고 개탄하며 이를 시정하고 변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당시 국가 재정의 토대가 되는 ‘삼정’, 즉 전정과 군정 그리고 환곡의 문란이 극심하여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이 중 환곡과 군포제도가 가장 폐단을 일으켰다. 다산은 잘못된 사회정책의 시행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함에 대해 통탄하며 수령들이 본분을 잊어버린 채 사욕만을 추구하는 현실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온전하게 백성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바로 목민관이 갖추어야 할 도리라는 점을 밝히며 수기치인에 힘써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어야 할 것임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지금까지 목민심서의 사상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 목민심서에서 중요시 여겼던 재해와 그 대책, 인권존중, 수리시설의 설치와 개선, 아전의 농간과 횡포 방지, 공정한 법 집행 내용을 살펴보며, 목민심서가 애민사상과 국민주권사상을 바탕으로 백성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책을 담고 있음과 더불어 현대 한국 복지사상의 바탕이자 정책의 근간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18~19세기 농업사회와 왕정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21세기의 탈 산업화 사회와 민주사회에서 바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고 현대적 개념으로 치환해야 했던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목민 사상은 유교적 전통사상에 기초하면서도 민주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보건의료, 빈곤퇴치, 교육기회확대 등 기업 활동을 통한 창조적 자선사업을 벌이는 ‘빌&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설립 목적과 강령 비교를 통해서도 목민심서가 동서양과 시대를 뛰어넘는 선진적 복지이자 정책임을 알게 되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본받아 선진국의 정책 시스템만을 수용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와 사상을 존중하여 발전시키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공직자들이 청렴한 정신만 회복한다면 세상은 살만해 지고, 부정과 부패도 사라질 것이다. 다산의 맑고 깨끗한 정신을 거울삼아 우리가 바라는 공정하고 올바른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다음 2부에서는 목민심서에서 다루어진 다양한 복지정책 분야와 목민정책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박석무(2016) 중앙일보 칼럼 “부패 없는 선진국의 길은 다산사상에 있다”, 다산연구소, 금장태(2005) 정약용-실학의 세계,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pp267-269, 최 성(2010) 큰 강과 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는다, 다산초당 p54, 한양원(2009) 한눈에 익히는 목민심서, 나무의 꿈 pp40-41
 
 
칼럼소개: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들을 찾아  칼럼을 통해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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