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의 정치칼럼 10] #MeToo #Withyou

'미투' 를 위협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미투 운동(영어: Me Too movement)201710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된 해시태그 #MeToo 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 해시태그 캠페인은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사용했던 것으로, 앨리사 밀라노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밀라노는 여성들이 SNS에 여성혐오, 성폭행 등의 경험을 공개하여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의 보편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고 이후, 수많은 저명인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러한 경험을 밝히며 이 해시태그를 사용했다.

 

이후 이러한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대한민국에서도 서지현 검사의 폭로와 이윤택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를 기점으로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자 나의 무지를 반성한다.’ 며 성추행 혐의를 자백하는 연예인도 나올 정도이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며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징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들의 미투를 가로막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해자들의 대처법 되다

 

형법 3071항에는 '사실적시 명예 훼손' 조항이 있다. 진실을 말해도 당사자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이러한 점을 악용한다. 명예훼손 고소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의 협상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지난해 상담 통계를 보면 법률 지원 상담자 중 역고소 관련 상담자가 32%에 달했다. 송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민우회 측 설명이다.

 

명예훼손은 적시한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 사실이라 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지인이나 공공에 알릴 때 상대는 명예훼손죄를 물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허위사실이 아니므로 가해자가 소송을 걸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가해자는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사실을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는 위축되어 성폭력 고소를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는 명예훼손죄가 피해자 입을 막는 용도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11월 펴낸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를 보면 가해자의 명예훼손 역고소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어 여성의전화는 명예훼손 고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황을 뒤바꾼다. 성폭력 사건이 '억울한' 가해자의 감정을 통해 전달됨으로써 피해자는 죄인이 되고 가해자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성폭력 입증까지도 피의자가 된 피해자에게 넘기게 되니 (가해자로서는)'밑져야 본전'인 싸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안내서에 나온 사례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입을 막으려고 고소를 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정신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 나는 당연히 '성폭력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조사실에 들어가면 '꽃뱀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게 힘들다.”며 명예훼손 역고소로 조사받는 상황의 고통을 토로했다.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하는 국가 많지 않아

 

일각에선 일찍부터 국내에서 미투운동이 벌어지지 못한 요인 중 하나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꼽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사실을 적시했음에도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을 받는 나라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많은 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거나 폐지 논의를 하고 있다.

 

미국에선 뉴욕, 캘리포니아, 일리노이스, 텍사스 주 등 다수의 주에서 명예훼손 처벌조항이 위헌으로 처분되거나 자발적으로 폐기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뉴질랜드 등 상당수 선진국도 명예훼손죄의 형사처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 나라에선 대개 명예훼손 고소가 형사가 아닌 민사에서 다뤄진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세계 각국에 형사상 명예훼손의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지난 2015년 한국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권고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명예훼손법 개정해 피해자 보호 제도 마련해야

 

최근 미투 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명예훼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명예훼손죄와 관련, 김재희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서 공익적 목적이 있으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위법성 조각 사유를 조금 더 폭넓게 인정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은 법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지만, 명예훼손 사실은 입증하기가 쉽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미투를 선택하는 이유에는 피해 사실을 법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가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혔는데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시작해야 해 사건의 쟁점이 뒤틀린다.

 

피해자로서는 피의자 신분으로 방어한다는 점이 힘들고, 수사 기관에서도 명예훼손을 먼저 당한 피해자에 대해 편견을 가져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위법성 조각 사유 확대, 사실적시 명예훼손법 폐지, 미투 운동과 관련된 성폭력 특별법 제정 등 성폭력 사건 역고소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형사소송도 문제이지만, 민사소송이 걸렸을 때 가해자가 유명인인 경우 손해배상액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폭로는 개인의 용기로 할 수 있지만, 법적인 문제는 우리가 함께 해주기 어렵다. 결국 사회적 분위기가 미투 운동을 따라가며 변화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Me Too’를 외치며 세상에 자신들을 드러내고, 우리가 그들을 향해 ‘With You’를 외치며 그들을 응원하고 돕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미투 운동이 지향하는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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