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어 수능특강에 이야기 속 일화의 중요성을 다룬 지문이 있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다른 건 다 잊어도 글 속의 일화는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정작 관심 가져야 할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관심은 이미 존재하기에 그것의 부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관심의 방향이 재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일상을 궁금해한다. 특히 그것이 연예인의 일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면, 일반인들의 브이로그 영상에 대해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와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타자화’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단지 이 세상을 살아갈 뿐인 ‘사람1’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화려한 모습의 사람들에게 매료되는 것이다. 일반인도 우리와 다르다고 여겨지는 ‘특별함’이 있다면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함’은 대체로 빛나는 것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일상을 살펴볼 만큼 여유는 있으면서, 정말 관심이 필요한 일은 눈여
몇 주 전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어떤 사람들이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이야기하며 시위를 비판했다. 나는 그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었다. '그럼 이런 세상 속에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이다. 장애인단체의 시위가 처음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이렇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올해 지하철 시위가 아닐까 싶다. 이들은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이 사안이 정치계로까지 넘어가면서 서로 사과를 요구하기도 하고, 철폐하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등 더욱 복잡한 일이 되었다. 나는 이 사건의 논의는 다수와 소수의 권리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서울 시민과 사람들은 이번 시위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시위에 반대하는 이들은 전장연이 시위를 함으로써 출근길 지하철을 이용하던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나도 이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과연 이들이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호소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주장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있었을까? 조용히 시위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효과를 불
점점 세계화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분위기를 방송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놀러와 우리 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해 퀴즈를 맞히고 이야기하는 ‘대한외국인’까지. 한국은 요즘 외국인에 열광적이다. 왜 외국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자주 방영될까? 수요가 있으니 방송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외국인이 나오는 방송을 좋아할까? 답을 내리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우리가 ‘국뽕’을 느끼기 때문이다. 국뽕, 흔히 나라 부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애국심이라는 말로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잘하는 모습, 외국인이 김치를 좋아해서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애국심이 생긴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나는 여기서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공감은 친밀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태도로 이야기하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까지 하는 외국인을 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애정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여전히 현금 결제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처음 키오스크를 접했을 때, 주문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 접하는 나도 어려웠는데 키오스크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불편일지 생각했다. 노인분들이 자연스럽게 대면으로 주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기술의 발전이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지만 여전히 불가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기술의 발전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요즘 트렌드는 비대면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비대면 방식의 선호가 급증했다. 현금 소비자는 줄고 카드 이용자가 늘었다. 이에 따라 여러 음식점과 카페도 새로운 운영 방식을 도입했다. 흔히 우리가 키오스크라고 부르는 기기는 터치 하나만으로도 주문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매장을 가든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따. 비대면이라는 트렌드와 현금 대신 카드, 카드 대신 인터넷결제 등의 결제방식의 선호 또한 기술 발전의 결과다. 하지만과연 ‘모두’의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키오스크 도입의 피해는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그리고 장애인에게 돌아갔다. 노년층에게 키오스크는 낯선 존재다. 일각에서는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