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맞은 백화점에는 가게마다 각종 패딩이 걸려 있다. ‘따뜻한 구스 다운’, ‘올겨울은 덕 다운 패딩과 함께’와 같은 홍보 문구를 걸고 늘어선 패딩은 우리 눈에 당연한 11월의 풍경이다. 하지만 당연해도 되는 걸까.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패딩의 생산과 소비는 정당한 것이 될 수 있는 걸까. 2015년 11월, JTBC는 ‘산 채로 털 뽑히며 발버둥…구스다운 '거위들의 비명'’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우리가 자주 사 입는 패딩에 들어가는 거위 털을 얻기 위해, 거위들은 비윤리적으로 사육되며 도살될 때까지 잔인하게 털을 깎인다는 내용이었다. 영상 속, 사람들은 거칠게 거위의 털을 깎았고, 그 과정에서 거위의 살이 뜯겨 나가기도 했다. 뜯겨나간 부위는 그 자리에서 꿰매졌다.1 그러나 대중들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겨울마다 구스다운과 덕 다운패딩의 소비는 그칠 줄 몰랐다. 오히려 2017년 겨울은 ‘롱패딩’의 엄청난 대유행으로 거리에는 롱패딩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대중들에게는 ‘따뜻함’과 ‘유행을 따르는 것’이 ‘윤리적 소비’보다 우선순위였다. 문제를 인식하고 윤리적 소비를 하려는 대중들도 난
2017년 여름, 막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끝난 시점이었다. 전 시즌보다 더한 열기와 함께, 시즌을 통해 탄생한 그룹 ‘워너원’과 다른 연습생들에게 수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참가자들에 대한 인기와 더불어 화제를 낳았던 것은 주체적인 ‘팬덤’이었다.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동안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팬들은 방송에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들의 요구가 방송 및 관련 활동, 상품 생산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소비자가 더 이상 수동적인 위치에 머무르지 않으며, 생산자의 역할도 하게 된다’며 이들을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프로슈머(prosumer)라고 불렀다. 나도 그에 대해 기대를 했던 사람중 하나였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 같은 경우, 팬들은 참가자들에게 ‘양육 감정’을 느끼고 그들을 위한 마케팅, 영상 콘텐츠 제작, 굿즈 제작 등의 활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팬덤의 목소리는 기업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팬덤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며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모습이, 소비자가 주체성을 획득하고 능동적으로 변화해간다는 증거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2020년 현재,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확실한 치료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확진자 수는 늘고 줄기를 반복하며 사람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이 하나 더 등장했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지도 않고, 우리 일상에 큰 변화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현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전염병, 바로 ‘인포데믹’이다. #‘인포데믹’이란 무엇인가? 인포데믹은 ‘정보’라는 뜻의 ‘information’과 ‘전염병’이라는 뜻의 ‘epidemic’의 합성어로,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마치 전염병과 같이 빠르게 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2003년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포데믹’이라는 이름하에 이 현상을 정의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스페인 독감을 비롯한 과거의 전염병, 재난 상황에서도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었다.1현대 사회에서 ‘정보’가 가지는 힘이 더욱 커졌고, ‘인포데믹’의 심각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코로나 19와 ‘인포데믹’ 잘못된 정보의 확산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일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것이 특히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에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마스크, 거리 두기에서 시작해서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생활이지만 우리는 생활의 변화에 비교적 잘 적응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변화, 우리가 새롭게 적응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우리 일상생활의 모습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개개인의 가치관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있다. 그 중심에 ‘자유민주주의’가 있다. 우리 헌법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함께 지향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이 말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당연한 것중 하나이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시대에서, 우리의 권리의 근본을 나타내고 이념의 지표가 되던 자유민주주의는 혼란의 중심에 있다. 우리가 지금 무엇보다 필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 당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익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과 공개, 거리두기를 위한 집회 금지, 강력한 행정명령과 처벌 등은 1년 전만 해도 불가침의 영역이자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것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세기 정보화 사회가 시작되면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고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처리는 우리의 삶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항상 그 편리함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우리의 삶이 모두 데이터로 전환되고, 잘못된 데이터 처리로 우리 삶이 뒤바뀔 수 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상의 나의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원치 않는 곳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지도 꽤 되었다. 이제는 이와 같은 우려를 넘어 데이터와 권력, 그리고 인간 존재에 관해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의 개인정보, 인터넷 검색 기록, 페이스북 활동 내용은 모두 모여 ‘빅 데이터’가 된다. 빅 데이터는 말하자면 이 세상 모든 정보의 집합체라 할 수 있고, 현시대부터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것이 권력과 힘의 원천이 된다. 가만히만 보면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정보 덩어리같이 보이는 빅 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는 귀중한 자산이다. 거대한 데이터를 특정 알고리즘을 설정하여 분석하면 대상자의 성향, 능력 등 무한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능성을 먼저 알고 일반인들이 알아채기 전에
유머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 나라마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선호하는 유머가 다르기 때문이다.1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유머의 재료가 되고, 그 양상은 사회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특정 유머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바탕에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 사회생활을 통해 형성한 공감대 등이 있는 것이기에, 유머를 보면 그 사회를, 그 구성원들의 관심사를,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추론을 해 보면, 대한민국의 대중매체에서 활용되는 유머 코드를 보면 대한민국 사회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다양한 유머가 생산되고 있고, 그 양상이 매우 다양하지만, 오늘 주목할 것은 TV에서 사용되는 유머이다.전통적으로 TV의 유머는 정치권 또는 사회적 불의를 소재로 한 풍자가 주를 이루었다. 미국의 경우, 4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SNL’은 정치적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강도 높은 풍자와 비판을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호이테 쇼 (heute-show)’라는 심야 풍자 프로그램이 따로 있으며, 최근에도 코로나 사재기 사태
SNS가 만들어진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며, SNS는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언택트(untact)’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SNS를 통한 비대면 소통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SNS 속에서는 여러 가지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고, 현실과 또 다른 방식으로 유행이 돌기도 한다. 시공간의 초월, 알고리즘에 의한 연결과 같이 SNS 공간 자체의 특성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으나,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SNS와 현실 세계의 연관성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SNS가 그것의 특성을 기반으로, 현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점점 더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SNS는 현실 세계 속 여러 가지 요소들의 가치를 결정짓는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이라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SNS인 ‘인스타그램(Instagram)’에 ‘가능한’이라는 뜻의 영어 접미사 ‘able’을 붙인 신조어이다.1 말 그대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뜻이다. 이 단순한 신조어는, 현실 세계 속 사람들의 경험이 목적
우리 주위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국내의 소외계층에서부터 전 세계의 빈곤층, 사회적 약자들까지. 이들에게 도움을 줄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필요한 것이 경제적 도움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 자체를 지원하거나,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사기 힘든 식료품이나 필수용품들을 살 돈을 기부할 수도 있다. 특히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전염병 사태로 빈곤층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기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전염병은 약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이전에도, 상당수의 사람이 각종 단체를 통해 세계 각지의 빈곤층, 우리나라의 소외 계층을 위한 기부금을 전달했다.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초록우산, 유니세프, 기아대책 등의 자선단체들이 기부금을 모아 필요한 곳에 전달하고 있다. 이 단체들 외에도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을 위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자선단체들이 많으며, 각각 기부금을 받아 사회 각 소외계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코로나 19가 심각해지자 연예인들은 자선단체들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았고, 각종 챌린지를 통해 선행 릴레이가 미디어에 빈번하게 보도되었다. 이런 따뜻한 모습을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라고 일컫는 것들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유난히 이런 민감한 소재들이 많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거쳐 특정 주제에 대한 찬반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서로 타협점이란 없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페미니즘 등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이슈몰이를 하고 있는 화제들부터, 세세한 것 하나하나에서도 타협을 하지 못한다.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라는 책에서 간극 본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단히 말해 세상을 양 극단으로만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용어이다. 경제 등의 영역에서 세계가 양 극단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차이점보다는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극단보다는 겹치는 많은 부분, 공통점에 집중할 때 사회는 다르게 보인다. (참고: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김영사, 2019) 물론 이 책에서는 세계의 가난, 교육 등 기본적인 수치에 대해 ‘간극 본능’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만, 이는 각 국가와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양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입장들도 자세히 보면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보편적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대중 매체에서 자주 쓰이는 몇 가지 표현들이 있다. 빈번하게 제목에 사용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키워드들, 일명 ‘낚시 기사’에서 훌륭한 낚시꾼 역할을 하는 표현들이여기 포함된다. 특정 표현들이 기사 제목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표현을 보고 기사를 클릭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주 보고, 또 자주 영향을 받는 그 표현들이 곧 우리 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 대중 매체만큼 사람들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또 없고, 그러한 표현들에서 대중이 어떤 표현에 흥미를 느끼는지, 어떤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는지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대중매체에서 쓰이는 표현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문 기사들에서 쓰이는 표현을 보면, 그 수준은 매우 심각하다. 연예 뉴스를 생각해보자. 어떤 연예인의 결혼 발표 기사가 뜨면 항상 앞에 붙는 표현이 있다. ‘품절남’, ‘품절녀’. 너무나 자주 보는 표현이라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품절’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이 다 팔리고 없음’이다.1 절대로 사람에게 사용될 표현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최근 강남역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라는 의혹을 받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여성 혐오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람들도 있고, 정신 질환으로 인한 범죄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우리에게 여성에 대한 차별의 심각성을 다시 보게 해 주었음은 분명하다.여성 혐오, 여성에 대한 차별 그리고 편견여성 혐오는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 증오, 차별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여성을 '김치녀','된장녀' 등으로 칭하며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 자신들의 억울함과 피해가 모두 여성 때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 여성의 사회 진출로 자신들의 취업이나 사회 활동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최근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는 양성평등의 길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이 뒤에는 아직도 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숨어 있다. 여성 혐오뿐만 아니라 여성이 무능력하다는 인식, 여성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등이 완전한 평등의 길을 막고 있다.여성은 과거 농경 사회에서 집안일을 하며 무능력한 존재로 여겨졌다. 지금은 사회가 변화하여 성별과 관계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들이 대부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