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채린의 영화칼럼 3] '영웅'이 무엇인가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영웅'이 무엇인가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체슬리 설렌버거(설리)는 40여 년간의 비행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살려낸 영웅이다. 대부분 영화에서 많은 사람을 살려낸 영웅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신이 이뤄낸 기적에 웃음 짓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설리 기장은 홀로 고통스러워하고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기는커녕 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술에 대해 추궁받기도 한다. 영화에서 설리는 영웅과 사기꾼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영화는 비행기가 도시 한복판에 추락하는 위기일발의 상황으로 시작한다. 물론이건 설리의 악몽이고, 곧 잠에서 깬 설리는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도시를 질주한다. 악몽에서 깨어난 이후의 설리는 차에 치일 뻔하기도 하고 허공을 바라보는 등 넋이 나간 모습을 보여준다.


설리의 이런 모습들 다음으로 설리가 비행기 사고에서 승객들을 구해낸 영웅담에 대한 뉴스릴이 등장하는데, 설리는 그 뉴스를 보고 뿌듯해한다거나 자랑스러워 하는 기색 없이 자신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승객의 인터뷰를 외면해버린다. 자칫하면 비행기 추락사고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다쳤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설리가 끌어낸 결과는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 설리가 허드슨 강에 긴급착륙한다고 했을 때 전원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만을 예상했을 뿐 이런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단한 일을 해낸 설리는 사람들에게 영웅이라고 추앙받지만 정작 그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사고 당시의 기억들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의문점을 가졌을 것이다. 저렇게 큰일을 해낸 사람을 영웅으로 대하기는커녕 그가 한 일을 지적하고 추궁하는 위원회가 정상인가 하는 의심도 할 것이다. 더불어 설리가 계속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고민과 위원회의 조사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전원 생존을 했다 해도, 모두가 죽을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이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인의 자질과 과거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설리의 모습이 우리가 평소 알던 영웅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설리의 모습을 통해 나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의 정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특정 인물을 영웅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은 노력과 능력을 통해 세상을 구하는 인물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구했다는 업적을 통해 일개 시민에 불과했던 사람은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게 보편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웅일 것이다. 보편적인 생각을 설리 기장에게 적용해보자면 그는 어떤 사람도 반박할 수 없는 영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결과 혹은 업적을 영웅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기준은 영화에서 나타나는 설리의 고민에서 찾을 수 있다. 설리의 고민을 시작부터 찾아내자면, 우선 비행기가 추락할 뻔 했던 그 날로 돌아가야 한다. 영화 내에서도 사건의 재배치를 통해 나타나는데,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떼를 만난 설리는 자신의 비행에 위험이 생겼음을 알아채고 해결책을 찾으려 시도한다.


추락을 막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던 회항에 실패하고 설리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대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면 비행기에 탑승한 155명의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결국, 설리는 원칙대로의 해결방법인 회항을 포기하고 도심 속의 허드슨 강에 비상착수를 결정한다.


회항이 실패했을 때부터 관제탑과 부기장 제프는 모두 추락을 예상했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설리는 비상착수를 훌륭하게 해낸다.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나서야 혹시나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승객을 찾으며 설리는 비행기에서 내린다. 관제탑에서 내리는 지시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설리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를 것인가 고민했던 모습에서 나는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하고 수행하는 태도가 감독이 생각하는 영웅의 첫 번째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위원회와의 조사와 사건에 대한 진술을 고민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설리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두 번째 기준은 바로 자신의 자질과 선택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다.


영화 속의 설리는 고독하다. 옆에는 유일한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기장 제프가 있지만, 그도 가끔 등장할 뿐 대부분 생각에 잠긴 설리의 단독 등장 장면이 대부분이다. 그의 고독함이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은 술집에서 시민들이 설리를 알아본 장면이다. 모두가 대단하다며 뉴스에 나온 설리와 눈앞에 있는 설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칭찬하지만 설리는 웃지 못한다.


매스컴에서 설리를 영웅이라고 칭송하지만 설리의 내면에서는 ‘내가 정말 영웅인가?’ 하는 의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승객을 죽음에 이르게 할 뻔했던 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오랜 비행생활을 빌미로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내가 영웅 그리고 기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면서 더욱 깊어진 그 고민의 끝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청문회에서 설리는 그동안의 고민을 해결하고 위급 상황에서 승객을 살릴 수 있었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입증을 시작한다. 확률과 원칙에 의한 위원회의 판결에 반박하며 위급 상황에서의 인적요소를 추가하며 왜 설 리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밝혀나간다.

 


이렇게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고민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난 설리의 모습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생각하는 두 번째 영웅의 기준임을 알 수 있다. 남들의 인정과 칭송을 받는 자가 영웅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감독의 견해 또한 드러난다. 예전의 고전적인 영웅과는 다르다.


최근의 영웅 영화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비슷한 영웅에 대한 견해가 드러난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배트맨과 슈퍼맨과 같은 영웅들도 사람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의심을 반복하고 특히 <어벤져스>에서도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반복된 도시의 파괴와 함께 피해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영웅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를 비롯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들을 통해 할리우드의 영웅에 대한 견해와 기준 또한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진정으로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재난 현장의 긴급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장면이 아닌 새롭게 등장하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고전적인 영웅들에게 익숙한 사람들에게 던진 영웅에 대한 메시지는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전을 무릅쓰고 영화를 통해 자신의 ‘영웅’을 표현해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은 사람들의 주목과 여러 관점을 통해 평가받아야 할 작품임이 분명하다.


 

 

칼럼소개 :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 칼럼을 보고 의문을 제기 할 수 있고, 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바를 소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게 저에게는 매우 뜻깊은 일로 생각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이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영화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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