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원의 철학칼럼 4] 노동의 의미 - 변화한 시대

자본주의 프레임 변화의 필요

자본주의 사회에 태어나 어느정도 '사회'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을 즈음, 어린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답한다

'공무원'


그 이유는 안정적으로 소득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꿈이 '공무원'인 세상. 이 것이 자본주의를 떠받드는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다. 과연 어린 아이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게끔 하는 이 사회 구조가 옳은 것일까.




자본주의의 이상과 괴리된 현실


물론 처음 자본주의가 구상한 노동시스템은 지극히 이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 완성과 실현을 위해 자율적으로 노동해 온전히 자신의 것인 노동의 결과를 얻는 것, 이것이 태초 자본주의가 꿈꾸던 이상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앨빈 토플러, 마셜 맥루한과 같은 사람들은 이 시스템이 실현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 이상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어딘가에 취직하고 돈을 벌기 때문에 자신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노동할 것을 사회로부터 암묵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그들은 모두가 하는 것을 따라 하며 그저 돈을 위해 취직하고 돈을 위해 남이 시킨 일을 타율적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대부분이 돈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많은 이가 돈에 허덕인다. 현실의 노동은 자본주의가 추구하던 노동과는 상당 부분이 다른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떤 이는 약간의 보수(補修)를 통해 이를 고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 보수로 현대의 노동이 자본주의의 이상적인 노동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인가. 현대 사회는 정보기술사회이고, 이 사회에서는 연속적인 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기술의 혁신을 연구하는 이유는 노동의 절약, 즉 노동의 배제를 위해서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잉여가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고, 종국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실업을 낳는 결과를 양산하게 된다.


프레임 변화의 필요성 대두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노동은 인간의 탐욕, 시대상 등의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현대 사회에서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이제 우리 사회는 기존의 자본주의라는 프레임이 더는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돈 돈 거리는 사회에 지칠 대로 지쳤고, 물릴 대로 물렸다. 이제 우리는 다른 프레임을 원한다. 우리는 노동이 의무가 되지를 않기를 원한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의해 산업화를 하는 시점부터 의무가 된 노동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의무로서 존재해도 되는지. 우리는 이제 노동이 아닌,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삶의 목표로 삼기를 원한다. 생산적인 일은 충분히 기계가 해낼 수 있다. 그것이 인간들이 여태껏 기계를 개발해온 이유이다. 이제 그러한 부분들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다른 창조적인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다. 기계의 발전으로 인간은 문화적 부분에 치중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기회를 사용하지 않고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지금의 자본주의는 정말로 “현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에 걸맞은 시스템인가? 현재의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언가를 끌어낼 수 없고 소수의 탐욕만을 채워줄 뿐이다. 재차 말하건대,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 이제 노동은 변화해야 한다. 노동에 대해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해야 하고, 노동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주체도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다른 무언가를 지향하고, 연구하고, 이루어내야 한다. 그것이 변화한 현대의 시대상이다.


칼럼 소개 : 철학은 우리에게 낯선 학문이 아닙니다. 한 가지 논제에 수많은 가치와 관점을 담을 수 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학문이며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한 학문입니다. 칼럼을 통해 쉽고 재미있는 철학으로 한 발짝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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