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지의 영화칼럼 4] 발사는 착륙과 같다

중력의 부재로부터 도출한 삶의 의미

“발사는 착륙과 같다.” 

발사가 착륙과 같다니. 영화가 끝난 뒤에 머릿속에 남은 대사가 이 것 뿐이라는 게 한심할 정도로 집중해서 봤던 장면이다. 맷의 환영이 나타나 라이언을 깨우고 나서 남기고 간 해결책은 ‘Landing’에 사용할 에너지를 추진에 이용하는 것. 어쩌면 맷이 도움을 준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생각해내고 생각대로 실현한 것은 라이언 혼자였다. 삶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던 라이언을 끝까지 살게 한 힘이 무엇일까.



그래비티를 본 게 벌써 3년 전이다. 세월이 지나서 OCN에서 다시 마주친 그래비티는 내 뒤통수를 때리는 듯하다. 우주는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가혹하고 무자비하다. 지구에 있다고 해서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상처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소유욕은 우리 내면의 살갗에 타는 상처를 내지만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없다.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을 수 있다.

라이언과 맷은 자기 자신과 서로를 제외한 그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다. 그들은 ‘無’의 상태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살 방법을 모색하는데, 가면 갈수록 꼬여 가는 느낌이다. ‘Gravity’, 지구가 우리를 당기는 힘이 우리가 자신을 통제하게 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분명 갇혀 있는데, 갇혔다는 사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우리의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린 지구에 붙잡혀 있는 신세다. 우리는 너무 가벼운 존재들이기에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통제할 줄 모른다. 중력이 도와서 땅에 발이라도 붙여 놔야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의미도 가치도 가질 수 없는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설명은 너무 지나친 왜곡이다. “발사는 착륙과 같다”는 말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기초적 사실’에 눈을 뜬다. 발사가 착륙과 같음을 떠올리는 시점부터 죽음을 눈앞에 둔 라이언의 삶에 ‘의미’가 부여된다. 결론적으로 삶도 죽음과 다르지 않다. 삶의 시작은 곧 끝이 있음을 의미하며 그것을 자각할 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영생이 있다면 분명 우리를 자만의 늪에 빠지게 할 것이고 파멸의 길로 몰고 갈 것이다.

분명한 건 지금의 우리 또한 자만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고요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비티는 무성영화에 가깝다. 라이언이 우주에서 “Silence”가 가장 좋다고 하면서도 그 고요에 발목 잡혀 절망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의 소음을 잠깐은 꺼두고 가장 당연한 것의 소중함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고통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아래 대사는 맷이 라이언에게 해준 조언이다. 

“Listen, do you wanna go back, or do you wanna stay here? I get it. It's nice up here. You can just shut down all the systems, turn out all the lights, and just close your eyes and tune out everyone. There's nobody up here that can hurt you. It's safe. I mean, what's the point of going on? What's the point of living? Your kid died. Doesn't get any rougher than that. But still, it's a matter of what you do now. If you decide to go, then you gotta just get on with it. Sit back, enjoy the ride. You gotta plant both your feet on the ground and start livin' life. Hey, Ryan? It's time to go home. “




칼럼 소개 : 간과할 수 있는 사소한 부분까지 날카롭게 분석하여 영화 해석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영화의 일상적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독특한 발상으로 비상식적 접근을 시도하여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파헤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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