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빈의 가요칼럼 8] K-POP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단짠단짠 ⑧ - 스토리텔링의 성공적 모델

얼마 전 ‘말춤 동상’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논쟁으로 ‘강남스타일’이 여러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오가는 가운데, 여전히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에서는 싸이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꾸준한 조회 수 상승을 기록 중이다. 강남스타일의 성공 요인은 국내 온갖 매체들에 의해 분석되다 못해 거의 해부될 정도로 파헤쳐진바, 너무나 진부하게도 유튜브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싸이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안무는 유튜브라는 강력한 매개를 만나 인터넷 메임(meme)화 된 하나의 개그 코드로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난 5월 K-POP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의 상을 거머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K-POP sensation’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는 매해 5월 열리는 미국의 음악상으로, 정량적인 수치만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수상자 내역이나 면면을 보면 시장의 지표를 보여준다는 느낌이 큰 시상식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번 수상자 중 단연 이질적인 존재였다. 미국 시장을 타기팅 한 영어 콘텐츠를 공식적으로 낸 적이 없음에도 불구, SNS상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측정하여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빌보드에서 매주 발표하는 ‘소셜 50’(팔로워 증가량과 스트리밍 등 소셜 활동을 기반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도를 측정하는 차트)과 SNS 투표를 합산해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이 상은, 어떤 아티스트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소비자층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지, 온라인 마켓에서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수상이 쇼의 말미에 배치된 덕에 주목도도 높았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를 써칭하다보면, ‘K-POP reaction’이라는 제목의 영상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주로 해외 K-POP 팬들이 좋아하는 K-POP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면서 반응을 하는 단순한 콘텐츠로 시작하였는데, 현재는 개그 요소를 담거나 일명 ‘K-POP trash’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K-POP에 대해 무지한 자신의 친구나 가족과 함께 리액션하는 영상 등 다양한 종류의 리액션 영상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제목에 ‘BTS(방탄소년단)’가 포함된 영상들은 타 영상들보다 조회 수와 댓글 수가 훨씬 높다. 막강한 수와 파워를 자랑하는 그들의 해외 팬덤 덕분이다. 실제로 외신 기자들이 그들의 팬덤인 ‘A.R.M.Y’에 대해 분석기사를 여러 편 써 낼 정도로 영미권에서 ‘BTS’의 인기는 주목받고 있는 기현상이다.

 

파워풀하면서도 정확한 군무와 서구권에게 익숙한 음악 장르,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 등 이미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은 여러 언론매체에서 다루어왔다. 하지만 그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제시한 요인들은 아티스트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어 유입을 발생시키긴 하지만, 과연 이 단단한 ‘팬덤’의 형성 요인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타 K-POP 아티스트에 비해 그들의 충성도는 굉장히 높은데, 이러한 ‘코어화’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하나의 콘텐츠가 된 그들이 유도한 차별성은 바로 음악을 주축으로 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다.

 

1.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은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가 제안한 개념으로,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하나'로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심화하는 컨버전스의 한 현상으로, 젠킨스는 이를 문화적 컨버전스의 특징적인 트렌드로 간주한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예시로는 ‘마블 시리즈’를 들 수 있겠다. 디지털 매체 시대에 트랜스미디어라는 분야는 굉장히 주목받고 있고, 팬덤을 단단하게 구축한다는 점에서 매우 상업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집어내었다. 앨범 활동에 ‘학교 3부작’, ‘화양연화 2부작’, ‘윙즈’ 라는 주제를 잡고, 그들의 서사를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으로 풀어낸 것이다.

 

2. 방탄소년단의 세계관과 스토리텔링

방탄소년단의 가장 큰 세계관은 화양연화로서 멤버 각자가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고통을 겪고 성장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주제가 청춘성장인 만큼 그들은 아픔, 불안, 희망, 행복이라는 감정 키워드를 갖는데, 이를 미장셴으로 승화시켜 앨범에 실리는 음악과 함께 프롤로그 영상, 콘서트 트롤로지 영상, 뮤직비디오 등의 영상플랫폼에 담아냈다(필자가 이전 칼럼에서 풀어냈던 봄날이라는 곡의 스토리텔링 또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의 서사는 공연플랫폼으로도 진행된다. 앞서 말했던 연작 형태로 묶어낸 화양연화등의 키워드들을 콘서트의 주제로 잡고, 공연 내에서 다양한 장치를 활용하여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다. 결국 팬들은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따라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특징 중 하나인 단단한 팬덤이 구축된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들은 최근 새로운 플랫폼들을 반영하는 눈치다. 이미 기사를 통해 전문 스토리텔링 작가를 모집한 것이 알려진 바 있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9, ‘스메랄도(Smeraldo)’ 라는 키워드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서사를 예고하였는데, 그 예고의 과정이 꽤나 흥미롭다. 가장 먼저, 멤버 중 한명이 스메랄도라는 꽃을 SNS(트위터)에 언급하면서 힌트를 던졌다. 당연히 수많은 팬들이 이 꽃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써치를 시작했고, 얼마 안 되어서 블로그 글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스메랄도라는 꽃에 대한 정보를 다룬 사이트가 특정 블로그 하나였다는 것이다. 결국 추리 끝에 팬들은 그 블로그가 스토리텔링을 위해 소속사가 직접 만들었으며, ‘스메랄도라는 꽃이 새로운 세계관인 ‘Love your self’를 구축하는 가상의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소속사는 거대한 드라마 형식 프로젝트의 서막을 알리는 멤버별 예고 포스터까지 순차적으로 공개하였다. 이에 더해 지난 14일에는 화양연화 the notes’라는 제목의 조각글을 게시하여 화양연화 스토리를 추상적으로 텍스트화하기도 하였다. 하나의 세계관 스토리텔링을 위해 무려 세 가지의 미디어플랫폼을 활용한 셈이다.

 

3. K-POP의 새로운 성공지표?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해외 매체만이 아니다. K-POP 아티스트들을 양산해내는 국내의 여러 소속사들은 방탄소년단의 스토리텔링이 이룬 성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지금껏 몇몇 소속사들이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시도하였지만, 사실상 단발성에 불과하였고 이렇게 큰 세계관을 꾸준히 유지하여 스펙트럼을 넓혀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K-POP시장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이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방식을 그들도 차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극단이라는 작은 세계관을 구축한 구구단’, 연작 형태의 뮤직비디오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트와이스’, 일곱 악몽이라는 세계관으로 스토리텔링을 시도하는 드림캐쳐’, 판타지 장르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는 몬스타엑스등이 그 예시이다.

 

단일화 되어가는 K-POP 시장에서 신선함이라는 코드는 흥행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듣는 음악에서 보고 듣는 음악으로 전환되어가는 세계적인 엔터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더더욱 그렇다. 이제는 단순한 마케팅으로는 어필이 힘들다는 말이다. 1세대 아이돌과 비교하면 K-POP 아이돌의 음악적 수준이나 비주얼이 세련되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자본의 형성도 훨씬 커졌고,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은 확실히 성공의 지표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데뷔하는 많은 신인 아이돌이 이 방식을 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 그리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드림캐쳐의 경우는 록이라는 조금 이례적인 장르의 행보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스토리텔링의 방식과 잘 맞아떨어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렇듯 단순히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음악과 비주얼 요소를 놓지 않고 함께 꾸준히 진행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칼럼 소개: 감정의 올을 바느질하는, 덜 여문 글을 씁니다. 음악과 문학, 가요와 시. 장르의 경계를 적당히 허물어가며, 재미있고 다양한 각도의 견해를 담은 '단짠단짠'한 칼럼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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