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민의 독서 칼럼] 요조,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2020.11.11 09:00:44

내가 나를 위로하며 또 다시 이겨낸다

독서포럼으로 접한 ‘인간 실격’은 그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토의를 마치고 그동안 내가 만난 인물과 파격적인 차이를 가진 요조와 보다 깊이 있게 만나고 싶은 까닭에 그의 행동을 따라가며 그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한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부유하지만,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있다. 자신의 욕구와 무관하게 광대처럼 가면을 쓰고 타인의 흐름에 의해 살아가는 요조, 그래서인지 그는 자살 기도, 술과 마약에 의존하며 살았던 인간이다.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익살꾼’을 자처했던 요조는 결국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아이러니하다. 인간들의 세계에 애썼던 그였지만 그는 그 세계에서 그 자격을 잃는다. 나는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가 인간 실격이 되기까지 그가 경험했을 세계는 무엇이고 그에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얼마 전 읽은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을 생각하며 그 답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가 옆에 있다면 윤홍균 박사의 ‘자존감 수업’을 권하고 싶다. 자존감의 중요성, 자존감을 위해 버려야 할 마음습관, 자존감 회복을 위한 실천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은 그 바탕에 자신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기반을 둔다. 실제, 책의 본문에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결정하기 힘들다’ 는 내용을 담는다. ‘어릴 때는 부모의 결정에 의해 주어지지만 결국 결정의 몫은 자신이며 인간은 결정해가는 과정으로 성장을 한다’ 는 내용은  인상이 깊다. 요조의 불안한 삶도 어찌 보면 그의 선택이요, 결정이다. 그러나 매번 자기 파괴적인 결정을 선택한 그의 마음은 ‘자기’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내린 결정 일가? 그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자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자기를 잃은 채 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요조가 자기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할 수 없었던 이유에 또 다른 궁금증을 갖게 한다.

 

요조가 인간 실격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공허함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채웠던 그의 선택과 결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서적 기반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함이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함이다. 그의 텅 빈 마음에서 그의 낮은 자존감을 발견한다. ‘인간 실격’을 읽으며 내가 요조에게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은 ‘왜 본인을 그렇게까지 망가뜨려야 하는가’였다. 요존은 부유한 환경에서 어린 요조가 경험한 두려움은 과연 얼마나 큰 것이기에 스스로 자기를 버렸던 것인지 멍멍함을 느낀다. ‘그의 곁에 이 같은 마음을 헤아려줄 사람이 있었다면 어쩌면 희망과 용기로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상황에서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를 알아차려 자기중심을 세웠더라면 그의 삶은 ‘인간 실격’이 될 만큼 처절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인간과 관계하고 상대하고 남은 에너지를 자신에게 집중했다면 요조의 마음은 적절하게 채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라보는 세상은 그래도 살만했을 것이다.

 

한편, 공허한 마음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고 그것을 채울 방법은 자살 기도, 술, 마약 등밖에 몰랐던 자신에 대한 무책임한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 가면으로 고민 없이 대처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애초에 그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물론 우리는 사회적으로 그 대상에 따라 적당한 자신의 모습을 취한다. 그러나 내 안에는 내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타인과의 갈등도 있고 이를 해결하고자 적절하게 타협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잃었을 땐 때로는 방황하고 자신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예를 나는 귀신을 무서워한다. 그런 나를 위해 무서움을 느낄 때, 노래를 틀거나 그 환경을 바꾸는 등 나름 노력한다. 나 또한 요조처럼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 방법을 생각하지만 나는 귀신을 무서워하는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대처 방법을 찾는다. 요조는 이런 나와는 다르다. 그는 가면으로 그 상황에 대처했기에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 자신은 너무 외롭고 그 기반은 없어 공허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의 상처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할 때, 지금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고 나아질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요조는 달랐다. 나를 바라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않았다. 그는 타인이 만족할 만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내가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 건 아닌지 답답했다. 물론, 요조가 처음부터 자기 없이 인간관계를 한 건 아니다. 적응할 여력이 없었던 그는 결국 타인이 바라는 내 모습을 택하기까지 아마 그도 많은 고민과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견딜 수 있었더라면’ 안타까움이 남는다. 요조가 자기 자신을 조금만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었더라면 요조의 선택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요조는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그가 올바른 방법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자신에게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집중하는 시간이 요조에게는 본인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계속 사회 구성원을 두려워하게 된다. 본인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타인의 눈에 본인이 어떻게 비치든 ‘내’가 먼저가 되게 되는데 요조는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에 지속해서 인간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상처 받아왔던 것이다.

 

다행히 ‘자존감 수업’( 윤홍균 저 )에서 ‘자존감은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낮은 자존감을 회복할 방법까지 제시한다. 실제 도움을 받았던 나는 요조에게 이 책을 꼭 전하고 싶다. 특히, 나는 이 책에서 ‘남의 인생은 모두 쉬워 보일 수 있다’( ‘자존감 수업’ 내용 ) 는 내용이 인상 깊었는데,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위축된 자신으로 타인이 두렵게만 느껴지고 졌을 외로움은 더 진하게 느꼈을 그에게 ‘요조,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위로할 수 있었다면 살만해지고 끝없는 추락은 멈췄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것을 알려 줄 그 누구도 없어 당신이 참 힘들었겠다’는 말을 책 속에서 나누었다. 그러나 필요가 없는 감정을 하나씩 버리고 나에게 더 집중해야 했던 것은 요조의 몫이기에 요조는 결국 자존감을 회복할 수 없었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사랑받는 것이 반드시 타인일 필요가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값진 사랑이다. 우선 나의 소중함을 알고 나부터 사랑해야 누군가를 사랑할 여유도 생긴다. 당신은 스스로 당신에게 집중하고 당신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요조에게 꼭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다. 자기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방법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문제의 해결 방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삶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귀를 기울여야 그에 어울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의 자존감은 높아질 것이다. 이 방법으로도 행복해 지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취해봐야 하겠지만 먼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간 실격 될 만한 삶의 모습은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이수민 기자 dorothyandb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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