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마지막 종착지 충칭

충칭에서의 독립 활동은 어떠했고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여러분은 상해 임시정부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가장 유명한 상해 임시정부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물론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설립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해서 그곳에서 머물지는 못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임시정부의 이동과 마지막 종착지인 충칭에 대하여 간단히 말해보겠습니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자 임시정부는 항저우, 자싱, 전장, 난징, 창사, 광저우 등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940년 4월 충칭에 자리를 잡은 임시정부는 1945년 독립을 맞이할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게 됩니다. 임시정부가 충칭에 있던 기간은 일제감정기 기간 중 가장 활발하게 독립운동이 펼쳐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예로 1939년 창설한 한국 광복군에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대원들이 합류하기도 하였으며, 그중 일부가 영국군에 파견되어 연합 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광복 후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1990년대 초에 충칭 도시 재개발 계획 때문에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으나 한국과 중국이 함께 노력하여 지켜낸 후 1995년 8월 11일 정식으로 다시 개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중국에 있는 우리의 독립운동 전시관 중 가장 큰 전시관입니다. 이곳에서는 독립운동 당시의 독립열사분들과 광복군들의 사진과 유물,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 기사를 읽으시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상해 임시정부가 유일한 임시정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나 만화 등으로 쉽게 접한 상해 임시정부만을 기억하시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의 조상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셨던 역사는 알아야된다고 생각됩니다. 이 기사가 당신이 좀 더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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