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의 수의학 칼럼 9] ZOOBIQUITY

원 헬스(One Health)를 넘어 주비쿼티(Zoobiquity) - 통합의학 큰 걸음 (수의학과 인간의학의 운명적 만남 )

원 헬스(One Health)는 이제 거의 상식적인 말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과 동물과 환경의 건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One Health 개념아래 많은 캠페인이 벌어지고,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UCLA 의과대학 심장병 전문의 바바라 네터슨의 ‘의사는 모르지만 수의사는 아는 것 (what veterinarians know that doctors dont) 이라는 TED 영상강의가 있다.

UCLA 의료센터에 근무하는 자신이 우연한 기회에 LA 동물원을 방문해 수의사들을 돕게 되면서 얻은 깨달음을 소개하며 강의를 시작한다. 그녀는 “10년 전 LA 동물원 수의사의 요청으로 동물원에 방문해 침팬지의 심장 이미지를 촬영한 것을 계기로, 마코앵무새, 물범, 사자 치료를 도왔다. 그 뒤로도 종종 LA 동물원을 방문해 수의사와 함께 증상을 논의하고 질병을 진단했다”며 “나는 동물들의 치료를 도우며 수의사와 의사가 똑같은 질병을 다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심부전, 뇌종양, 당뇨, 백혈병, 관절염, 유방암 등 모든 질병이 사람과 동물에서 같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또 이렇게 많은 부분이 겹치는데, 지금까지 왜 한 번도 환자를 돌볼 때 수의사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고도 한다. 모든 의사들은 동물과 사람 간의 생물학적인 연관성을 인정한다. 사람이 복용하거나 처방받는 모든 약물은 사실 동물들에게 먼저 시험 된 것들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의학과 수의학 간에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인간이 더 특별하다는 우월감이 자리잡 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도 동물이다. 우리 의사들은 이제 우리의 환자와 우리 스스로가 동물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수의사들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며 강의를 마무리 한다.

 

 

 

 

바버라 네터슨과 캐스린 바워스의 Zoobiquity (번역본 -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

인간의 건강과 동물의 건강, 그리고 환경의 건강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 개념을 근간으로 쓰여진 베스트셀러가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동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ZO’에 ‘모든 곳’이라는 뜻의 라틴어 UBIQUE’를 붙여 만든 단어인 주비퀴티 'ZOOBIQUITY'는 인간의학과 수의학, 진화의학의 결합을 뜻한다. 인간과 동물의 구분 없이 수의사와 의사가 여러 종의 환자 정보와 치료기술을 함께 공유하면서 의학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새로운 개념의 의료 접근법이다.

공룡은 암을 앓았다. 말은 자해를 한다. 고릴라는 우울증에 걸린다. 골든 레트리버, 재규어, 캥거루, 흰고래는 유방암에 잘 걸린다. 도베르만은 강박 증상을 보이기 쉽다. 새와 물고기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을 잃는다.

인간과 동물의 질병이 다를 바 없다. 인간과 동물이 아주 유사한 질병에 시달린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것이다. 물론 인간만의, 혹은 특정 동물만의 질병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인간이 앓는 질병을 다른 동물에서 찾는 것이나, 다른 동물들이 앓는 질병을 인간에게서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 의학이 그것을 애써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일이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감염과 같은 사태다. 동물에서의 감염과 인간의 감염을 서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수의사와 의사가 대화가 단절되면서 그 정체를 알아내는 게 지체되었고, 그 지체의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사람과 조류가 희생을 당한 것이다.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연결뿐만 아니라, 진화상으로 연결된 수많은 질병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zoobiquity라는 이해는 동물에게서 인간의 질병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으며, 동물 자체에 대한 이해,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바바라 내터슨은 동물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뿐 아니라 고릴라, 사자, 왈라비(캥거루과 동물)도 치료한다. LA 동물원에 출장 진료를 가기도 하고, UCLA 의료센터에서 수의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인간을 치료하기도 한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인간 외 다른 동물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개선될 수 있는지, 혹은 그 반대 방향의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이런 게 진짜 통섭(consilience)이고 융합(convergence)이다. Zoobiquity는 수의사와 의사가 여러 종의 환자 정보와 치료기술을 함께 공유하면서 의학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새로운 개념의 접근법을 의미한다.

그녀는 인간의학이 수의학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제적인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심장학자들이 2000년대 초반, 감정(emotion)이 심장질환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이 증상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수의사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그 사실을 알고 진단·치료 및 예방까지 해오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수의학적 지식이 의사들에게 일찍 알려졌다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 인간환자들은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를 내는 자해를 하는데, 동물들도 자해를 한다. 자신의 깃털을 뽑는 새들도 있고, 피가 날 때까지 옆구리를 물어 뜯는 말들도 있다. 수의사들은 자학하는 동물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고 예방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들이 배워야 할 귀중한 지식임이 분명하다.

산후우울증 때문에 여성이 우울증에 걸리고 아기를 학대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어미 말이 새끼 말을 거부하고 학대하는 foal rejection syndrome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수의사들은 어미 말의 몸에 옥시토신을 증가시키면 어미 말이 다시 새끼 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치료법을 알아냈고 장비도 가지고 있다. 산부인과와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수의학적 지식들이 의학계에 적용됐다면 많은 환자들이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네터슨 교수는 사실 의대보다 수의대가 더 대단하다고 인정한다. 의대에 가면 호모사피엔스 한 가지 종에 대해서만 배우지만 수의대에 가면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 그리고 조류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수의사들의 농담 중에 한가지 종만 치료할 수 있는 수의사(veterinarians) 가 인간 의사(physicians)라고 한다.

네터슨 교수는 지금도 UCLA의료센터와 LA 동물원을 오가면서 인간 의학과 수의학 간에 상호 교류와 발전을 실천하고 있다. 그녀는 다윈온라운드(Darwin on Rounds) 프로그램을 통해 UCLA의료센터의 인턴, 레지던트들과 동물 전문가와 진화 생물 학자와 함께 일하게 하고 있다. 또 의대와 수의대가 함께 동물과 인간환자들이 공유하는 질병과 장애들에 대해 토론하고 협업하도록 하기 위해 주비퀴티(Zoobiquity)라는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통섭과 융합은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통섭과 융합으로 통합의학의 큰 걸음을 내디딜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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