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언 교육 칼럼] 나는 일어났었을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Captin, oh my captin!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키팅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고맙다, 다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선생님을 보며,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이게 끝이라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온 대부분의 선생님은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명문 대학교에 진학 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려 한다. 그러나 키팅선생님은 좀 다르다. 그는 문학의 가치를 그래프로 나타낼 수 없다는 듯, 

책을 찢으라고 한다. 그리고 학생에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을 이야기한다.

 

이 중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일까?

시를 교육과정에 맞춰 공부시키는 선생님? 시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선생님?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 모든 학생들이 책상에 올라가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어설 용기가 없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키팅 선생님이 모든 학생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니까, 어쩌면 당연한 것임에도 조금 마음에 걸렸었다. 은연중에 모두가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있었다면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일어나 책상위에 올라섰을까?

 

현재 교육에 대해 불만이 있는 학생들을 꽤 많이 봐왔다. 시를 쓴 사람은 이런 생각으로 절대 쓰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우리가 그걸 왜 그렇게 외워야 해? 미적분 배워봤자 거스름돈 계산할 때 적분이라도 써? 등등.

굳이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들을 얼마나 잘 숙지했는가를 가지고 평가받는다. 

배우는 과정에서 지식의 폭과 사고력은 늘 수 있겠지만 척 보기에 실용적이지 않으니 답답하게 느껴지는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럼 이런 학생들은 일어섰을까? 

장담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키팅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들이라도 당장 입시가 급하다면, 키팅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학교에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보고 뒤에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일어서지 않은 학생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현실적으로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키팅선생님의 교육이 결코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는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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