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빈 역사시사 칼럼 2] 조선의 목조 건축 방식과 판옥선의 상관관계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이용해 대표 전투인 한산도, 명량, 노량대첩 등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왔다. 조선수군의 활약 덕에 조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역을 지킬 수 있었고 그를 이용해 군량미를 조달하려던 일본의 계획도 실패하였다. 거북선은 1413년에 처음 제작되었는데 이후 1513년, 1550년 발명되었던 창선, 윤선 등을 참고로 개량되었다. 오늘날 흔히 알고 있는 거북선이 사실 처음부터 그 형체를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거북선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조선 수군들의 함선인 판옥선을 바탕으로 지붕을 씌우고 포문을 설치했다. 판옥선은 2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1층은 격군들이 노를 젓고, 갑판 둘레에 화포를 두르고 방어력을 높였다. 거북선은 그러한 형태에 한번 더 지붕을 씌워서 적군들이 함부로 배에 뛰어들 수 없게 만들었다. 당시 일본 수군들은 직접 포격을 가하거나 사격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닌, 작지만 날쌘 배를 타고 상대의 함선에 들어와 장악하는 전술을 취했다. 그러나 지붕에 쇠못이 촘촘히 박혀있는 거북선에는 배에 올라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포격 기술도 상당하고 포격가능 거리 또한 멀었기 때문에 애초에 배가 가까이 오게 허용하지 않았다.

 

조선의 판옥선과 일본 왜선은 기본 건축 자재부터가 다르다. 판옥선은 강도가 높은 소나무나 참나무를, 왜선은 강도가 약한 삼나무를 사용하였는데, 바로 소나무가 더 가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소재나 설계 면에서 훨씬 단단하여서 다른 배에 부딪히는 충돌 전법 등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바로 조선 방법인데, 주재료인 나무와 나무를 서로 연결할 때 쓰는 못의 차이다. 조선의 판옥선은 나무못을 썼고, 일본의 왜선은 쇠못을 사용했다. 판옥선은 목조 건물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 있는데, 나무의 결합 부분에 장붓구멍이라는 ‘ㄱ’자나 ‘ㄴ’자의 홈을 만들고 그 자리에 s자 모양의 나무못을 박아 넣었다. 오랫동안 바닷물로 인해 나무못의 부피가 팽창하여 그 이음새를 단단하게 해주어 더욱 튼튼하다. 반면 쇠못을 사용한 왜선은 외부 충격에 매우 약하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나무 재질이 단단하다. 나무의 수축, 팽창을 생각하여 집을 짓고 배를 만든다. 대조적으로, 일본은 아열대 기후로 계절 변화 폭이 적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조선의 배는 나라를 지키는 배기 때문에 큰데 왜선은 단순히 노략질을 위한 배라 작고 날쌔다. 이러한 과학적인 관점과 인문적인 관점에서 분석했을 때 다각적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

 

단순한 조선 기술만으로도 우리는 선조들의 많은 지혜를 알 수 있다. 거북선만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의 해인사 같이 현재 기술보다 과거의 유산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우리가 새로운 걸 만들 때, 발견, 발명보다도 역사가 긴만큼 그 속에 나온 수많은 창작물을 오늘날에 재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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