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의 인문학 칼럼] 기능이 우선인가, 사람이 우선인가.

기능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레고르들을 위하여.

 

지난 5월, 교내 인문학 아카데미를 수강하던 나는 독서 토론을 위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접하게 되었다. 꾸준히 필독 도서, 권장 도서로서 들어 왔던 제목에다가 두껍지 않은 책의 두께는 편히 독서를 시작하게 해 주었다. 허나, 그 내용은 완전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책의 주인공인 그레고르는 한 집안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자, 장남이다. 늙은 부모와 여동생을 부양하면서, 여동생을 음악원에 보내 줄 계획까지 짜고 있던 훌륭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는 벌레로 변했다. 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여동생은 힘겹지만 그를 도와주려 애썼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폭력을 행사했다. 가장의 부재로 인해 집안엔 큰 위기가 찾아오리라 예측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나머지 가족은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그와 상반되게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겐 점점 냉소적으로, 마치 그가 짐이라도 된 것 마냥 대했다. 심지어 그를 살뜰히 챙기던 여동생조차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레고르는 시계에서 떨어져 죽게 되고, 그의 죽음과 대조적으로 남은 가족들의 모습이 아주 밝게 그려지며 책은 끝난다.

 

내가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그레고르를 철저하게 기능으로서만 치부하는 가족들의 태도였다.

그레고르가 가장의 역할을 상실하자, 가족들은 등을 보였다. 그럴 것을 예측한 그레고르는 제발 출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가 가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자,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외면당한 것이다.

 

심지어 그 사실을 그레고르가 알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모습이 현대 사회의 모습과 전적으로 유사하다고 느끼며, 독자가 불편함을 느껴야 할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변신`이란 작품이 최근에 쓰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사람을 능력으로, 사람을 부품으로 취급한다. 동일한 문제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기능이 우선인가, 인간이 우선인가. 나는 인간이라는 범주 내에 기능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되지 않은 자에게는 어떠한 기능조차 있을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는 취준생을 이력서로 보고, 수험생을 성적표로 보고, 직원을 실적으로 본다. 이러한 현실의 상당한 부조리함을 왜 아무도 개혁하려 들지 않는 것인가. 나는 무엇보다 인간 내면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보편화를 촉구한다. 나는 사람의 이력서보다 사람의 눈을 먼저 보는 시선을 요구한다.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5000만의 그레고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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