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린의 교육칼럼]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아.시.겠.어.요?

숫자로는 나타낼 수 없는 것

 

우리는 ‘숫자’에 예민하다. 숫자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숫자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아침 9시 종소리가 울리기 전 교실에 도착해야 하고, 정해진 템포 대로 움직이는 시곗바늘은 뒤로한 채 하루에도 몇 장씩 우리는 교과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고, 칠판 귀퉁이에는 ‘시험까지 D-10’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정성스레 적혀있다. 대한민국의 철저한 입시제도 속에서 숫자의 쓰임이 이 정도 뿐이라면 OECD 청소년 자살률 1위의 타이틀은 이미 한참 전에 던져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여전히 ‘명예’의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가고 있는 세계의 교육 혁명 행렬에도 한국은 끼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기본적인 소양을 배우며 자아를 확립해나가고,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저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저마다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와 가장 관련 깊은 고등학교에서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고등학교에선 1부터 9까지 총 9개의 등급으로 성적을 산출한다. 1등급은 학년 전체의 4%로 상위학생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 등급이다. 3학년 1학기까지 총 10번의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를 통해 자신의 ‘내신’ 등급이 산출되고, 내신 점수와 그간 학교에서 활동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재된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반으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굳어 온 시스템이기 때문에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재건축이 시급한 아파트와 흡사하다.

 

보통 성적이 좋을수록 그 학생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곤 하는데, 사실 내신이 학생 개인의 역량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험의 결과로 정해진 ‘숫자’만으로는 그 학생이 지닌 잠재력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학교의 의미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행평가 중 논술형 평가에서 우리는 개인의 생각을 써야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마저도 점수화되기 때문에 평가기준에 맞춘 답안을 만들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기 보다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한 조작된 생각을 적어서 내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또한, 각종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따라 수상 순위가 정해지게 되는데, 이때 상장에 적힌 순위 외에는 학생 개개인에게 별도의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회 활동을 열심히 준비하고 보여준 결과로 상장을 수여하지만, 결과물인 상장이 목적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확인하고 부족한 점은 보완할 수 있도록, 학생 개개인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 개개인에 대한 피드백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대학 진학에 유리한 활동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진학 목표 학과와 관련된 활동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도, 입시에 유리한 활동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워야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은 하지 못하고 대학 진학에 유리한 활동을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결국 우리는 오직 결과만이 기록되어 있는 학교생활기록부로 평가받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되고, 심지어는 자신의 점수에 따라 꿈을 달리 정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이 성장해온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력의 흔적이라 여기는 결과물을 가지고 학생을 평가하지만, 이 시스템 속에서 좌절한 채 자신의 꿈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의 제도를 바꾸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학교 내에서, 교과목 수업에서, 그리고 학생 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준비해나가는 그 짧은 순간순간 속에서 ‘숫자’에 일희일비 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보다 명확한 꿈을 꾸고, 정말로 인생에서 필요한 ‘배움’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혁명을 위한 작은 날갯짓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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