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빈 역사시사 칼럼 3] 폐지 줍는 할머니와 스타벅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생활 속에서 폐지를 줍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대부분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남루한 옷차림에 억센 손으로 손수레를 끄는 그분들은 가끔 식당이나 가게에서 나오는 폐지들을 가져가기 위해 점원에게 사정하기도 하고 서로 가져가겠다고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이는 대기업과 폐지를 줍는 노인들, GDP 등의 수치로만 보면 경제적으로 부유한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극과 극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왜 우리나라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길로 내몰리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게 된 것일까.

 

길거리로 내몰려 보지 못한 우리들의 손에는 지금 스타벅스 한 잔이 들려있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경제관념을 보면 돈을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브랜드 커피 한 잔 값으로 기본 5000원 훌쩍 넘는 비용을 지불한다. 학원가에 나서보면 스타벅스, 공차, 게이트 등의 각종 브랜드 커피들이 손에 하나씩 쥐여져 있다. 나도 한때는 게이트 음료를 즐겨 마셨는데 일주일에 세 번 그쪽을 지나칠 때마다 한 잔씩 사다보니 어느새 한 달에 커피 값으로만 4만원이 훌쩍 넘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하루에 한 잔 마시는 커피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노동력 값과 비슷하다. 일부 아르바이트 외에 스스로 돈을 벌지 않는 보통의 청소년들은 오히려 그 돈으로 기호식품을 사고, 60, 70대가 넘은 노인들은 그 돈을 벌어 하루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 이 풍경은 사회의 순환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사회 형태인 것일까 고민해 보게 된다.
 


사회에서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다. 젊고 일 잘하는 청년들을 뽑고 싶어하는 다수의 기업들 때문에 정년퇴직을 하거나 나이가 들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특별히 할 수 있는 직업군이 없다. 또한 이전의 대가족 형태에서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는 관념이 줄어들고 있어 독거노인들은 증가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노후대비를 하지 못한 노인들은 폐지를 주으며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살던 독거노인이 사망하고 몇 주 후에야 이웃에게 발견되는 경우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인 뉴스가 아니다. 초고령화 사회에 돌입하면서 점점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그들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문제에 공동의 관심을 가지고 그런 분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자주 보던 분이 사라지면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대상이 노인분이라면 더 안 좋은 상황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일자리 창출에서 시니어인력을 활용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일자리는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인 성격을 띄기때문에 노인에게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안이다. 해외에서는 노인들이 레스토랑의 웨이터 등을 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청년의 수가 줄어들고 노인의 수가 많아져 점점 역피라미드 형태의 인구 구조로 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청년만큼이나 노인들을 경제 활동 인구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심코 쓰는 생활 소비 형태를 반성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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