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현의 웹소설 이야기 1] 로맨스 없는 로맨스 판타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여성 주인공=로맨스 작품?

[도서 안내] 본 도서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타인의 로맨스를 묘사하는 내용이 나오며.

주인공의 로맨스는 나오지 않습니다. 도서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위 글은 로맨스 판타지 카테고리의 웹소설 <에이미의 우울>의 판매 페이지에 들어 있는 실제 주의 문구이다.  <에이미의 우울>은 여성인 주인공이 친구인 남성과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을 통해 이미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판타지 소설로, 주의 문구에서 표시되었듯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여성 주인공의 로맨스 서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에이미의 우울>과 같은 일명 ‘로맨스 없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는 이 작품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제니스>, <레사의 거울>, <밑 빠진 용병대에 돈 붓기> 등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작품은 물론이고 <정령왕의 딸>, <아린이야기> 등 과거 판타지 장르의 카테고리에 속해 있던 작품 또한 현재 몇몇 플랫폼에서는 로맨스 판타지로 분류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이 '로맨스'카테고리로 분류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나열한 작품들에는 주인공의 로맨스가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작품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사실 말고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작품에서 내세우는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관점을 조금만 바꿔 보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판타지는 로맨스 관계가 중점인 이야기이든 아니든 모두 '로맨스'로 취급 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여성 주연의 판타지 작품이 '로맨스' 카테고리에 들어가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옛날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히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유명 웹소설 사이트인 J 사이트가 과거에 취했던 안일한 대처에 있다. J 사이트는 배경을 판타지 세계로 설정하기는 했으나 작품의 전개는 로맨스 관계만을 중심으로 둔 작품들과, 판타지 모험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들이 한 카테고리 내에서 무분별하게 뒤섞이는 일이 잦아지며 회원들의 불만이 높아지던 상황을 방치했다. 한참이나 회원들 간의 다툼을 좌시하던 J 사이트는 카테고리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인기 작가들이 사이트를 이탈하자 뒤늦게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신설했지만, 깊어진 갈등의 골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여성 주인공의 판타지 배경의 로맨스를 선호하는 회원층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로 이동했고 남성 주인공의 판타지 모험 서사를 선호하는 회원층은 '판타지' 장르에 남았다. 이후 로맨스를 중점으로 하지 않는 여성 주인공의 작품이 판타지 장르에서나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나 환대받지 못하게 된 상황은 현재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현재의 웹소설 플랫폼들은 주인공의 성별이라는 피상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장르 카테고리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일은 바꿀 수 없다. J 사이트의 대처가 안일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나 몇 년이 지난 사건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난처한 일이다. 그보다는 작가가 원하는 장르를 존중하고 태그나 소분류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이제라도 표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노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 로맨스 소설로 둔갑하는 것은 2019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시대상에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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