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재 영화칼럼] 영화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전작과 다른 이유

자본주의(capitalism)란 ‘사유재산제도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장 경제의 운용 권리’로 현재 서유럽과 미국,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이 경제체제 아래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의 가장 실질적인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는 영화가 있다. 한국 최초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이다.

 

봉준호의 전작들인 ‘괴물’, ‘설국열차’, ‘옥자’ 등을 보면 주인공들이 스스로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가 전개된다. 즉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하려는 희망이 영화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생충’은 조금 다르다. ‘기택’은 영화 후반부에 ‘박사장’을 칼로 찔러 죽이지만 이는 자신이 안고 있는 빈부격차 문제에서 오는 불쾌함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려는 충동적인 행위에 불과했으며 ‘기우’ 또한 나중에 돈을 벌어 아버지를 바깥으로 나오게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히지만 결국 카메라는 반지하의 모습을 비추며 그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를 통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1929년 대공황 이후 복지국가와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는 ‘수정 자본주의’를 통해 ‘풍요 속의 빈곤’을 해결하려 했지만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이후 다시 ‘신자유주의’로 진입하면서 복지를 축소했다. 부의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선악의 구도가 명백하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의 전작, 그리고 대다수의 다른 영화에서 재벌과 상류층은 악으로 묘사되고, 빈자들은 선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기생충’에서는 오히려 빈자에 속하는 ‘기택’의 가족이 부자인 ‘박사장’ 가족을 속이고 위장 취업을 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모두가 ‘자본주의’라는 굴레에 빠진 같은 사람임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면, 빈부격차로 인한 차별은 존재해도 되는가? ‘연교’는 ‘기택’에게 지하철 냄새가 난다는 ‘박사장’의 말을 듣고 차에서 그를 보며 코를 막고, ‘기택’과 ‘충숙’도 지하실에서 사는 남자 ‘근세’를 보며 자신과 그의 계급은 다르다고 구분한다. 하지만 ‘박사장’을 성공으로 이끈 회사의 직원들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것이며 ‘기택’은 결국 ‘근세’가 있던 지하실에서 살게 된다. 우리 모두 무심코 ‘그래도 내가 저들보다는 낫지’라며 누군가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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