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윤의 독서 칼럼]'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나라를 변화시킬 국민의 의지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120억 명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되는데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우리는 지금 정말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산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조금 더 맛있는 음식, 조금 더 예쁜 옷과 큰 집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잘 공감이 되지 않았다.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 등에서 해외 원조를 나감에도 불구하고 왜 현실은 변하지 않고, 악순환이 계속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나의 색안경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니, 그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가난한 나라의 지배층들은 그 돈을 자신의 이익을위해 쓰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영국, 프랑스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들만 식민지 국가들에서 생산하게 했다. 예를 들어 '콩' 이 필요하다면 식민지나라에서는 콩만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과거 열강들 사이에서는 획기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로 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대다수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콩이 아닌 다른 재료들을 수입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권력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대로 처리해 버리고 또 몇몇 나라들에서는 내전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악순환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이 악순환은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에게는 더 치명적이었다. 구호소에서 살 가망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되돌려지게 되는데, 아이들을 되돌려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더이상은 살 수 없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들의 슬픔과 미안함, 원망은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가만히 누워 죽음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부르키나파소' 라는곳의 상카라 대위 같은 지도자도 있었다. 그는 국민들의 생활여건 개선을 꿈꾸며 개혁정책을 추진했는데, 머지않아 이들도 외세의 달콤한 말에 휩쓸린 동료에 의해 제거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책의 끄트머리에서, 저자인 '장 지글러'는

"국제 원조에 기댈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손으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

고 주장한다. 국제 원조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 언젠가는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가난과는 조금 다른 사례이지만, 아프리카 소말리아에는 '소말릴란드' 라는 곳이 있다. 아직도 소말리아는 내전 때문에 집앞 슈퍼도 경호원들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이곳에 위치한 소말릴란드애는 무기를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평화롭다고 한다. 게다가 주민들의 자치 투표를 통해 지도자도 선발을 했다. 사방이 위협이었던 곳에서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나기까지 필요했던 것은 외세의 도움이 아니었다. 국민들이 합심하여 노력했기 때문에 자주적인 평화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단순히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도와줘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들이 진정으로 합심하고 노력할 때 원하는 바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지금 당장을 살아가는 것이 급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앞을 보고 자신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려면 국민들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의 호소에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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