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가 세상을 밝힌다.

 

7월 13일 케이블 결함으로 뉴욕에 일대가 암흑에 빠졌다. 신호등이며 지하철이며 모두 먹통이 되어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어두운 거리 위에 빛을 들고 나타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영화 <스타워즈> 팬들이었다. 정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광선검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들은 사고 방지와 교통통제를 위해 광선검으로 어두운 뉴욕 거리를 밝혀 주었다고 한다. 이 글을 게시한 SNS에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바로 “덕후가 세상을 밝힌다.”라는 댓글이었다. 이 댓글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좋아요’를 얻었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덕후가 세상을 밝히고 덕후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덕후는 일본의 ‘오타쿠’라는 단어에 유래된 말이다. 한국에도 이 단어가 들어와 ‘오덕후’라고 발음이 되었고 줄여서 ‘덕후’라 불리었다. 하지만 오덕후와 덕후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오덕후는 특정 취미·사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덕후는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한다.

 

덕후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푹 빠져 산다. 그 분야에 더 알아가고 알아가는 것을 넘어서 전문가가 된다. 전문성과 집념을 바탕으로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페이스북 창시자이자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로 알려져 있는 마크 저커버그는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컴퓨터 덕후였다고 한다. 그는 혼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도 11살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치과 사무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음악 재생 프로그램인 ‘시냅스’를 만들었다. 그는 하버드를 진학하고 그곳에서 ‘페이스북’을 제작했다. 초기에는 하버드생들만 사용하는 소규모의 커뮤니티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 대부분이 사용하는 SNS가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재밌고 친근한 웹툰으로 다룬 <조선왕실톡>의 작가 무적핑크는 특이하게도 정조덕후라고 한다. 그녀의 웹툰을 살펴보면 그녀가 가진 역사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서부터 역사를 너무 좋아했고 그 중 특히 정조를 좋아하여 팬클럽까지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인 <조선왕조실톡>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덕후의 전문성은 IT 기술과 만나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예전에 피규어 덕후라면 그저 피규어를 모으는 데에서만 그쳤지만, 요즘은 3D 프린터나 펜으로 직접 피규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인터넷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접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이제 더 이상 덕후는 세상 뒤에 숨어사는 은둔자가 아닌 세상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전문적인 생산자라는 것이다.

 

꼭 지금은 아니더라도 어느 한순간이라도 덕후였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에 몰두해 빠져 나오기 힘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열정은 아마 엄청났었을 것이다. 가끔은 그 열정을 추억해 보고 꺼내보았으면 한다. 그 때의 나를 미치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왜 그것에 미쳐 살았는지. 그리고 혹시 지금 덕후라면 그 열정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그 정도 열정이면 무얼 원하든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미래에 덕후가 될 나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격려와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 열정은 응원 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덕후는 세상을 밝힐 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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