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현의 정치/시사 칼럼 3] 누구를 위한 글인가.

현대 사회의 부조리, 그 정점에 서 있는 언론 권력을 파헤치다-2.

연일 나라 안팎이 혼란스럽다. 뉴스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구한말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한일 갈등, 러시아의 영공 침범, 북한의 도발, 목선 남하 등 매일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고, 그 이슈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그 중 일부 언론의 기사들은 보기 좋게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언론言論,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즉, 사회 전반의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대부분 일개 사기업일 뿐이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강력한 권력이기도 하다.

이 권력은 프레이밍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가지고 우리 사회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어떤 기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잘 요약된 단 하나의 문장은 기사의 제목이다. 해당 기사의 성격, 기사를 통해 말히고자 하는 것이 가장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제목은 프레이밍을 시도하는데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단이다. 누구나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기에 어느 언론사나 기사를 작성하는 논조가 있기 마련이다. 그 논조 자체를 규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특정 언론이 그 논조를 악용하여 자신들의 안위와 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17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특정 언론사의 행태를 지적했다. 기사를 일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눈을 의심케 하는 제목으로 고쳐 달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인 한국 청와대 (원제 :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 - 00일보>,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 (원제 :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40%,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 - 00일보> 등이 그 사례이다. 이외에도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 - 00일보',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 - 00일보' 등의 칼럼은 그들의 국적을 의심케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언론들이 우리를 위한 글을 쓰도록 감시해야 한다. 한낱 자본에 불과한 언론에 공적자격을 부여하고, 취재라는 명목으로 사회를 들쑤실 수 있는 특권을 쥐어준 것은 다름아닌 우리이다. 언론들이 부여받은 권리를 잘 활용하고, 그 권리에 대한 의무를 잘 이행하도록 감시하는 것은 권력의 주인이자 언론의 목적인 우리의 가장 큰 의무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끝에 스스로의 역할을 실현하는 '정명正名'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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