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나의 시사칼럼6] 표준어로서의 제주도 방언

유배로 생각해본 지식층의 언어

표준어는 지식층의 언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주 오래 전에는 어땠을까? 그 당시에도 수도의 말이 지식층의 언어였을까?

 

고려 때부터 생각해보자. 삼별초는 최씨 정권의 사조직이었지만 이후에는 독립 국가의 형태를 띄우기도 하였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를 거쳐 제주로 옮겨가며 고려인의 자주 의식을 지키려 하였다. 이후 제주에서 삼별초를 토벌한 원나라는 제주를 귀양지로 이용하고 반대세력들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기 시작한다. 원나라를 물리친 명나라도 명의 건국에 반대한 세력들을 제주에 유배시킨다. 이 때부터 수많은 지식인들과 상류층들은 제주로 오게 되었고 제주에 정착하여 살게 된다.

 

본격적으로 제주도가 유배지로 등장한 것은 조선이 정치 세력 간 공존과 협력보다는 패배한 상대방의 힘을 빼기 위한 방법으로 추방 또는 격리를 선호해왔기 때문이다. 귀양지에 본토와 격리된 제주도가 최적지로 부상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제주유배와 관련된 기록이 80여 회가 넘고 유배인은 2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제주도에 유배된 사람들이 전체 유배인 700명 중 200명이라는 것은 놀랄 만하다. 그러나 기록되지 아니한 것을 포함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유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추사 김정희 뿐 아닌 많은 지식인들이 제주로 유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가 워낙 오랜 기간 본토와 격리되어 있다보니 유배인과 토착민들 사이에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유배인은 토착민과의 접촉을 꺼리고 토착민은 유배인의 존재가 부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사이 서로의 문화와 언어, 사고 방식은 융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융합은 제주어가 현재까지 언어의 화석이라 불릴 만한 가치를 지니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오늘날에 제주어는 사투리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사투리다. 제주 사투리만을 제주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가장 지방의 사투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어는 토착어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당시 유배된 상류층이 사용했던 표준어라 할 수 있는 한글 자체로서의 가치 또한 상당하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래아 사용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때 부터의 역사와 현재 제주어의 가치를 바탕으로 생각해본다면 제주어야말로 지식층의 언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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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