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의 시사칼럼] 조건반사의 토끼: 애국이라는 이름의 폭력

냉전 시대 매카시즘과 베트남 전쟁은 국가를 어떻게 파괴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세계는 냉전에 돌입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했고, 각국의 식민지들은 해방과 독립을 맞이했다. 중국의 공산화와 함께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인들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그에 따른 공산주의의 확산이 일으킨 이른바 ‘적색 공포(red scare)’가 재발한 것이었다.

 

냉전의 사회상은 국가와 국가 간의 대결만을 내포하지 않았다. 30여 년 간 미국 사회를 지배한 냉전 이념은 자기 자신-미국 정부와 일부 정치세력, 그리고 시민들-에게 끝없는 최면을 걸면서 학문, 양심, 사상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들을 파괴해 나갔다. 1950년대 미국에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던 마녀사냥, 다른 말로 매카시즘은 극단적 반공주의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매카시즘은 공화당 소속 상원이원 매카시로부터 비롯된다. 

 

1950년 2월 공화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는 자신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카시의 주장은 동료 의원과 미국 내 여론의 지지와 함께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언론은 매카시의 근거 없는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고, 공산주의자로 지목받길 두려워 한 민주당은 매카시즘에 동조했다.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직장을 잃거나 피해를 입었고, 리버럴한 서적과 반공주의의 건전성을 의심하는 간행물들은 금지 조치되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오언 래티모어는 “매카시즘이 미국이 세계에 자랑할 모든 가치와 전통을 철저하게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매카시즘의 사상통제와 공포분위기는 민주주의를 그저 ‘무엇을 반대하기 위한’ 사상으로 둔갑시켰다. 50년대 미국을 집어삼킨 반지성주의는 모두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처럼 말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현상이 한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를 향한 군사적, 외교적 문제로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영국의 석학이자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이를 ‘제국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불러온 인류의 비극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은 1960년대 미국에서 그 망령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베트남의 정치적 상황은 공산주의 정당 ‘베트남독립동맹’에게 우세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화가 주변국의 공산화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했다. 1954년 제네바 협정은 베트남 전역에서의 총선거를 규정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은 이 조항을 거부하고 단독 선거를 실시했다. 남과 북은 분단되었고, 얼마 가지 않아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 정부는 아시아의 ‘도미노 공산화’를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 남베트남이 자력으로는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고, 1964년 통킹 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에 공식 참전하게 된다.

 

미군이 참전한 뒤에도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민간인 사상자와 미군 측 피해만 더 커져갈 뿐이었다. 승리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해졌지만,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진실을 외면하면서 오로지 국가의 체면유지만을 위한 목적의 전쟁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미국 정부가 젊은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기’를 지속하자 시민들은 반전(反戰)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평화라는 가치를 들고 일어섰다. 거기에 더해 1971년 뉴욕타임스는 베트남 전쟁의 미군 참전이 시작부터 조작이었으며, 미국 정부가 그간 지속적으로 국민들을 기만해왔다는 내용이 담긴 국방부의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했다. 반공주의에서 시작된 베트남 개입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을 만들어 내며 만들어진 7천 장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보고서였다. 정부는 국가 안보를 내세워 ‘비애국적’ 언론사를 즉각 고소했다.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처사였다. 물론 대법원은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두 사건 매카시즘과 베트남 전쟁은 그릇된 애국심이 전국가적(全國家的) 차원으로 발현될 때 불러오는 파멸적 결과에 대해 매우 잘 보여준다. 현실이 말 위에 쌓이며 끝없는 모순과 자유의 부정이 자기기만과 독선, 그리고 비인간성이라는 광기가 만들어낸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졌다.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은 파괴되었고, 진실은 억압받았다.

 

냉전적 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이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단 두 가지의 가치는 반공과 애국이었다.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에 동조해 무고한 이들을 자리에서 내쫓았던 이들에게 국익이란 무엇이었을까? 베트남 전쟁에서의 잘못된 정책 수립을 인정 않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국민 모두를 기만했던 이들에게 애국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사고회로에 ‘국가’와 ‘국민’이라는 가치가 작용하긴 했던 걸까? 그저 반공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폭력성과 파괴성에 함몰되어 더욱 중요한 가치는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베트남 전쟁의 전후 30년은 모든 사상을 흑(黑)과 백(白)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갇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이른바 ‘조건반사적 토끼’들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21세기, 구시대적 냉전 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국가 전략을 설정하기 위한 노력이 현재 진행 중이다. 창조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들의 건강한 노력만이 국가권력의 반지성적 폭력을 차단할 수 있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고 이 땅 위에 훌륭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오로지 주권자인 시민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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