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의 생명과학 칼럼] 이미 나아지고 있었어!

치료제가 우리의 회복을 방해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다.

 

농경사회에서까지만 해도 기생충은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는, 이를테면 불편한 동거인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대대적인 기생충 박멸 운동과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 치료가 적극적으로 행해져 왔다.

 

 

이러한 치료들은 주로 증상 완화에 주력하는데, 기침이 나면 기침을 멎게 하고, 설사가 나오면 설사를 멈추게 하는 식이다. 하지만 사실 감염에 의한 증상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기생충과 숙주의 대결을 통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번거로워 하는 여러 가지 감염 증상들이 실질적으로는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 체제라는 것이다.

 

1970년대, 한 재미있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실험에서는 실험 지원자들에게 이질균을 감염시켰다. 그리고 이중 절반에게는 지사제를 복용하게 해 이질균 감염으로 인한 설사를 멈추게 했고, 나머지 절반은 그냥 설사를 하게 두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지사제를 복용한 집단의 대부분은 감염이 낫지 않은 반면, 지사제를 복용하지 않은 집단의 83%는 감염에서 깨끗하게 회복한 것이다. 이는 설사가 일종의 방어 기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기침과 고열 또한 마찬가지다. 기침은 기관지에 있는 바이러스 등의 감염원을 효과적으로 몸 밖으로 배출해 내며, 고열은 체온을 극단적으로 상승시켜 기생충이 살기 힘든 조건을 만든다.

 

재미있는 사실이 아닌가? 우리 몸은 우리가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충분히 열심히 싸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치료 목적의 약물들은 도리어 방해꾼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기생생물에 대한 걱정으로 꾸역꾸역 화학약품들을 욱여넣을 때 우리 몸은 이렇게 외치고 있지 않을까, “회복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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