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의학/ 화학 칼럼] 거트루드 B. 엘리언. 그녀는 누구인가?

 

 

 

이 여성분은 저에게 엄청 큰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화학공학과를 진학하고 싶은 저에게 있어서 꿈을 주는 분이자 희망을 전달하는 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고난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고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이루어내시면서 자만하지 않고 평생을 누구에게 봉사하면서 지내신 분입니다. 그녀의 일대기를 처음보았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각박했고 세상은 그녀를 못살게 굴었으며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녀라면 힘들기 벅차서 쓰러지고 그냥 맡겨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갈 것 갔습니다. 이런 엄청난 무게를 견디고 극복한 그녀는 거트루드 B. 엘리언입니다.

 

위 사진에서 엘리언은 왼쪽에 계신 여성분이고 세상을 위해 노력하시며 결국 노벨생리, 의학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신 분이십니다. 이 분은  미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 발명가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녀의 청소년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 죽기까지 일대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녀는 1918년 1월 23일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셨고 어머니는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해 손에 책을 달고 살았습니다. 이 덕분에 두 학년이나 월반하여 15살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등 무척 총명하였고 과학의 모든 분야를 다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버지가 증권에 투자를 잘못하여 1929년 증권시장 대폭락으로 파산을 하고 맙니다. 불행중 다행히 그녀는 무척 뛰어난 학교성적 덕분에 1933년 뉴욕의 헌터대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화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장학금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대학교 졸업는 커녕 입학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녀가 화학을 전공하게 된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녀의 할아버지께서 위암으로 무척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것 때문에 이 끔찍한 병을 치료하고자 무엇인가를 해야하겠다 라는 강한 동기 유발로 인해 전공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여학생에게는 장학금도 화학 분야에서 주지 않기로 정하였기에 결국 병원에서 일하거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하지만 훗날 그녀는 이에 대한 한이 깊었던 탓인지 여학생들을 위하여 화학 장학금을 만들게 됩니다. 다시 그녀의 성인기 초반으로 돌아와서 그녀는 화학자로서 무보수 아르바이트를 하게됩니다. 그 후 돈을 모아 1년 후 뉴욕대학 대학원에 등록을 하게 됩니다.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녀는 병원의 접수담당자로서, 화학과 물리 대리교사로서 일하고 밤과 주말에는 논문을 써 결국 1941년 석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의 약혼자가 병으로 죽고 맙니다. 이에 대한 충격으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녀의 화학자로서의 업적은 세계2차대전 당시 일할 남성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돌파구로 삼은 그녀는 식품회사의 품질 관리를 하는 분석화학자로 고용되면서 기기분석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고 기계처럼 계속 반복되는 일을 하게 되며 배울것이 없다고 여기게 되자 그녀는 그만 두고 박사의 조수로서 1944년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공적으로 호감을 가지게 되고 서로의 똑똑함과 비상함을 알아보게 되면서 흔히 말하는 환상의 콤비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40년동안 동반자적 관계가 이루어져 공동 연구가 시작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그녀는 난관을 겪게 됩니다. 그토록 꿈꿔왔던 박사학위를 포기하게 되고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면서 후회를 느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실험실에서 아주 유용한 인력이었고 배움에 대한 갈증 또한 실험실에서 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들은 몇 년 동안의 힘든 연구 끝에, 백혈병 세포들이 복제되는 것을 방해하는 화합물을 만들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백혈병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또한 그녀는 1958년 아자티오프린이라는 약을 사용하여 개한테 신장을 이식하는데 성공적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그밖에도 여러 업적을 세운 그녀는 노벨상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의사도 아니고 박사학위도 없는 그것도 여성에게 상이 간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합니다.

 

그 후 그녀는 25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여러 대학들로부터 받아 합법적으로 엘리언박사라고 불리게 되었고 1991년 미국 국가 과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개발한 신약들이 마더 테레사가 인류를 위해 한 일 이상의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저는 여성의 몸으로 성평등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에서 이러한 노력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당시의 사람들 마저 인정을 해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슬프지만 그녀가 성공하게 만들어준 도우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그녀를 위해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가 그녀를 소개한 이유는 여러분이 어떤 고난을 만나도 그녀처럼 당당하게 극복하였으면 하여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기 바로 전에 시험을 봤었습니다. 학교 중간고사를 보고나서 너무 우울해져서 슬럼프에 빠졌고 심지어 부모님께서는 더욱 더 공부하지 않고 왜 놀고 있냐며 채찍질을 하셨습니다. 울쩍해진 저를 달래주는 건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상처가 닳고 닳아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될 정도로 심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겁을 먹은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맨날 눈물을 지새우며 잠을 청했습니다.

 

어느 날 이런 글을 SNS에 비공개로 올리게 되고 조언을 구했던 저는 어떤 한 분이 이 글을 보내주면서 이런 사람도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하시면서 다독여주셨습니다. 저는 바로 그 글, 즉 엘리언에 관한 글을 읽고 너무 슬퍼서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진정된 다음에 '이런 사람도 극복해가며 살아가는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바탕으로 저는 되튀어지는 공이 된 것 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울적하고 힘들어도 이 분을 생각하면 할 수록 그녀에 비해 자신은 괜찮은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게다가 이 계기를 통해 성격 또한 바뀌어 이제는 마음껏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분 덕분에 인생의 친구를 얻게 되고 성격도 원만하게 바뀌어 완전 다른 사람처럼 긍정적이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이런 상황에 처해지게 된다면 저의 글을 읽고 다시 일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울적한 하루를 날려버리고 힘을 냅시다!

 

그녀의 일대기에 관한 정보는 밑에 링크를 참고하였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Gertrude_B._Elion

https://www.nndb.com/people/099/000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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