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예원의 인문학 칼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다녀와서

나는 애국자인가? 나는 개인주의자적 밀레니얼의 대명사 격이다. 이런 나에게는 ‘애국’라는 말이 구시대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몇 개 안 되는 나라만이 ‘국기에 대해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애국을 강요받는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대한민국 축구팀을 응원하고, 국산품을 애용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나라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목숨도 바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인가?

 

 

서대문 형무소는 ‘우리’라는 의식이 약한 나마저도 들어가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곳이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외운 사람들이 이 형무소에서 옥사당하거나 사형당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말인 “사형”이나 “고문”이 이들에게는 일상이었고, 가까운 이에게 혹은 나에게 예정된 일이었다.

 

가장 인상이 깊게 남는 지하 1층에는 말로만 들었던 “지하 고문실”이 있었다. 같이 간 친구들은 무서워서 체험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체험해 본 것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마치 숨바꼭질을 하던 어린 시절을 연상하며 관 크기의 독방에 몇십 초간 갇혀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독립 운동가들에게는 그저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제가 행한 신체 고문이 당시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만 유일무이하게 행해졌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옥사에서 벽을 두드리며 수감자들끼리 의사소통을 하던 방법인 타벽통보법(Wall-tapping Communications)에 대해 배우며, 이들이 옥 속에서도 얼마나 치열하게 나라를 위해 싸웠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머그샷들 중 유독 어려 보이는 소년 소녀의 얼굴들도 있었다. 만약 내가 이 당시에 태어났다면, 일제 강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든 모르든 출세하기 위해 열심히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유학을 꿈꾸고 있지 않았을까? 공부의 목적을 생각하지도 않고 공부하고, 그 당시라면 공부하고 있었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2010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재개관을 기념하며 이 형무소에 있었던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이 남긴 발자국과 서명이 있었다.

“고문당하는 거, 그게 무서우면 독립운동 못하지.” - 이병희

“아무도 말하지 않는 땅, 그것은 강도질과 폭력이 자행되는 땅입니다.” - 박형규

 

애국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애국하기 위해 희생하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일제에 대항해, 독재정권에 대항해 자신의 뜻을 펼친 이들이 더욱 존경받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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