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의 시사 칼럼] 누구를 위한 알 권리인가

2010년 이후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되었다. 경찰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하여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이른바 '한강 토막 살인 피의자' 장대호의 신상 공개가 결정되었고, 자신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한 이춘재의 신상 공개 여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다. 그러나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반인권적, 반헌법적 흉악범죄 피의자 신원 공개는 정당하지 않다.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원 공개는 먼저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배한다.

신원 공개는 대상이 ‘피의자’ 신분일 때 결정된다. 피의자란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의 의심을 받아 수사를 받고 있는 자, 다시 말해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치기 전의 상태에 놓인 자를 말한다. 이는 곧 피의자의 범행 사실이 확정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 의사결정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찰이 자의적으로 범죄 혐의에 대해 판단해 신원 공개를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신원 공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다고는 하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찰 내부의 기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둘째, 형벌의 자기 책임 원칙을 위배하고 그 가족과 지인들에게까지 고통을 준다. 실제로 2016년 경기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당시, 피의자 조성호의 얼굴과 성명을 공개한 뒤 네티즌들이 조 씨의 가족이나 옛 여자친구에 관한 정보를 퍼뜨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연좌제가 폐지된 국가로, 범죄인과 특정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피의자 신원 공개는 무고한 주변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된다.

 

흉악범죄 피의자 신원 공개는 정당한 처벌이 아니다.

법체계의 시행은 이성적이어야 하고, 감정을 공적 판단의 근거로 이용해선 안 된다. 그러나 흉악범죄 피의자 신원공개는 명예형에 가까운 것으로, 단지 대중들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신상공개가 결정된 범죄자들의 경우 대부분이 무기징역 등의 중형을 받아 사회로 다시 나올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범죄 혐의가 무거울수록 신원 공개를 해서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그들의 주장에서 이성적 판단이 배제되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오히려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나을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들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범죄자 개인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잠깐의 분노를 해소할 뿐이다. 단지 그것만을 위해 모든 인간이 가져야 마땅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마땅한 권리를 앗아간다면, 선한 목적을 위해선 어떠한 수단도 용납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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