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과학칼럼] 과학의 기본은 의문이다.

과학에 대한 비유와 과학에 다가가는 방법

과학,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 사전적 정의이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4135&cid=40942&categoryId=32335) 나에게 과학은 마술 상자 같다. 안에는 인류의 안녕을 위한 보물이 들어있을 수도, 인류를 파멸로 이끌 폭탄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자를 버리고 안전한 방법을 택해야 할까?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쓰이고 있다. 누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더 발전된 문명을 만들 수 있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과학의 발전은 암모니아 합성, 합성섬유 제작, 건축자재 발전 등으로 우리에게 풍족한 의식주를 제공해 주기도 했지만, 위험한 폭탄의 제작에도 쓰이면서 전쟁 무기로써 우리의 의식주를 뺏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과학이지만, 위에서 말했듯 과학자로서 윤리의식을 지니고 과학을 발전시킨다면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에 주축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과학을 지금 우리는 교육과정으로써 배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이런 과학은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천재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먼은 “아직은 관찰이라는 그물망에 걸러지지 않은 채 ‘꽤 쓸 만한 추측’으로 남아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물망의 코가 예전에 쓰던 것보다 점점 작아지면 때론 그 규칙도 그물망에 걸러지게 될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확실한 정도가 각각 다른 명제들에 그것이 정말 옳은지 생각하는 것을 통해 진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현재 과학 이론들이 모두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진실을 추측해놓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진실에 가까운 과학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왜 이렇지?"라는 의문을 품어도 돌아오는 것은 "그거라고 그냥 나와 있으니까 그냥 외워"라는 반응뿐이다. 나는 학생들이 저러한 의문을 품으면 같이 궁금하고 탐구해 주고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교육을 통해 진정한 과학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우리, 교과서에 쓰인 진술들을 의심하며 탐구하는 학생이 적다. 이처럼 우리 또한 이러한 태도로 임한다면 자연을 이해하고 과학이라는 딱딱한 학문에 부드럽게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합리적 의심을 하며 과학을 배울 때 진정한 과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사고력 또한 기르며 더욱더 의미 있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다 같이 과학 이론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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