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빈의 영화 칼럼] 라라랜드- 이 영화, 이 노래

OST가 아님에도, 영화에 제법 어울리는 몇몇 노래들.

영상 매체를 완성하는 것은 인물의 심리가 함축되어 있는 배경 음악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김연수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는 함석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피아노 음계에 빗대어 표현한다. 사윌의 '미'와 칠월의 '솔' 은 아주 잠깐 동안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가,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함석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인 것이다. 배경 음악의 역할은 인물의 심리를 함축하는 것 외에도, 인물의 다른 결말-어떤 영화에서는 인물의 선택에 의해서 예정되었던 해피엔딩, 혹은 새드엔딩이 아닌 다른 엔딩을 맞이하기도 한다-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므로.  오늘은 특별히,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정말로 그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노래 몇 곡을 소개하려 한다.

 

1. <라라랜드>- night changes.(by one direction).

 

We're only getting older, baby
And I've been thinking about you lately
Does it ever drive you crazy
Just how fast the night changes?
Everything that you've ever dreamed of
Disappearing when you wake up
But there's nothing to be afraid of
Even when the night changes
It will never change me and you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 것뿐이라고,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는 듯한 노래, 'night changes'를 처음 들었을 땐 가을에 듣기 좋은, 전형적인 가을 노래라고만 생각했었다. 한동안은 정말이지 전형적인 가을 노래라는 생각을 하면서 night changes를 들었는데, 우리는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 것뿐이라는 가사에서 느껴지는 울림을 무시할 수 없어 두번 세번 반복해서 듣는 동안 몇 개월 전에 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아침 이슬처럼 투명하게 사라져 버리는 꿈을 붙잡을 수 없음에 절망했고, 꿈이 있었음에도 매일 짙은 안개 속에서 방황하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던 청춘들에게 바치는 헌사.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미아는 결국 세바스찬과 헤어진다. 세바스찬에 대한 미아의 사랑은 그녀가 세바스찬을 만나기 이전에 해왔던 사랑과 결이 다른, 특별한 종류의 사랑으로 묘사되었고 세바스찬 역시 미아를 무척 사랑했기에, 충격적이라고 느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이별이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한 직후에, 미아가 서둘러 재즈 바를 나간 직후에 세바스찬이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둘의 이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막연한 추측에 불과했음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미아가 배우로 성공한 이후에 다시 세바스찬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미아의 선택이 너무나 뜻밖이었다. 미아의 감정이 식어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지만, 미아가 세바스찬과 결혼했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 많은 것을 함축한다. '만약' 이라는 전제를 배경으로, 미아와 세바스찬의 삶은 올드 무비처럼 화려하고 일견 사랑스럽게 묘사된다. 반면 재즈 바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처럼 연출한 미아와 세바스찬의 '만약' 이 훨씬 현실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침울하고 우중충하다. 파란빛 네온, 그리고 보라빛 네온만이 미아와 세바스찬이 다른 시간에서 직면했을 현실을 함축한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시선이 좁은 허공에서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더 동요한 것은 미아였다. 세바스찬의 표정에서는 옛사랑에 대한 연민(미아가 불행해지거나, 삶에 만족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우연히 마주했을 땐 눈물이 날 것처럼 눈앞이 흐려지므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미아의 표정에는 당황, 서글픔, 아쉬움이 번져 있었다. 어쩌면 미아는 세바스찬을 계속 사랑할 계획이 없었기에, 그 재즈 바에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아는 변하지 않았다. 세바스찬 역시 변하지 않았다. 어떤 사랑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거나,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삶의 한 부분에서 영원히 반짝인다.

 

(코멘트: 한국식 막장드라마의 자극적인 요소를 꺼려한다면, 그래서 일부러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면,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은 정말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한바탕 웃고 싶어질 때로 미뤄 두기를. 연애사는 시시하지만, 망한 연애사는 아무리 막장이라도 최소한의 재미가 보장되니까. 뮤직비디오에서는 로맨틱한 가사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망한 연애'를 종류별로, 아주 상세하게 보여준다)

 

 

 

 

2.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18(by one direction)

 

i have loved you since we're 18

long before we both thought the same thing

to be loved and to be in love

all i can do is say that these arms were made for holding you

i wanna love like you made me feel when we`re 18

 

 

노래 전반에 걸쳐 18살 때 처음으로 네게 사랑을 느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너를, 너만을 사랑하고 싶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는데 설레이지 않을 수 있을까. 18은 달콤하고, 너무나 달콤해서 곡의 화자가 사랑하는 대상의 감정에 몰입해 이 행복이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지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을 품게 되는 노래다. 18살 때부터 너를 사랑해 왔다고, 오래 간직한 비밀을 털어놓듯이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이 노래야말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OST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나는 스토리보다도 OST가 좋았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라우브의 'I like me better'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분위기와, 결국 라라 진을 사랑하게 된 피터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한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난 아무래도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정말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 뒤에, 피터가 라라 진에게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후렴구 가사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스토리와 기막히게 맞아떨어져서 라라 진 역시 피터와 함께 있을 때의 자신을 더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끝내주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함께 보내는 순간을 오롯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십대 시절에 품었던 환상이 집약되어 있는, 지극히 사랑스러운 하이틴 무비다. 남몰래 좋아했던 아이 앞으로 쓰고 보내지는 않은, 다소 낯간지러운 편지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모른다. 정말 창피한 것은, 그 아이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여자친구와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아 보이기는 하지만, 애인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닌가. 둘 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되어서, 연애편지를 보낸 김에(그리고 받은 김에)'사귀는 척' 연기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정말 사귀게 되었다. 피터와 라라 진의 이야기는 얼핏 유치하게 들리지만, 가짜로 시작된 사랑이 결국 진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백하게, 그러나 일견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로맨스 영화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

 

(코멘트 : 노래를 만든 프로듀서가 에드 시런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부터, 묘하게 에드 시런 느낌이 풍긴다고 생각했었다. 에드 시런 특유의 느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느낌이 이 노래에 담겨 있어서. 에드 시런은 사실 노래에 이름표를 붙여서 발표한다는 농담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에드 시런의 감성이 원디렉션의 보컬 스타일과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노래 두 곡을 소개하면서, 멜로디와 가사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노래를 몇 번씩 돌려 들으면서, 대본이 영상 매체의 기틀을 마련한다면 음악은 벽을 하나씩 세우며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에 형태를 완성시켜 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이 세운 벽은 단절을 상징하는, 햇볕조차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단단한 장벽이 아니다. 어렵게 세운 기틀이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방패의 기능을 하는 벽이다. 영화에서 음악이란, 관객과 인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보편적인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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