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혁의 MLB 톡]가을을 바라는 필라델피아, 휠러에게 본 가능성

새로운 홈 구장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 적응이 완료되고, 같은 지구의 승점자판기였던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2005년과, 창단 첫 100승 시즌이자 마지막 가을야구 시즌이었던 2011년. 두 해 사이 7년의 시간 동안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5번의 지구 우승을 해 냈고, 한 번의 우승을 포함한 두 번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해 냈다.

 

이 기간 동안 필리스는 연평균 92.3승을 거두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내셔널리그 팀들 중 가장 높은 수치이며, 이후 8년인 2012년부터 현재까지의 기록을 살펴보더라도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 그들보다 높은 연평균 승리를 기록한 팀은 94.6승의 LA 다저스밖에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위 7년 동안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했던 해이자 창단 첫 100승을 이뤄낸 2011년 이후 필라델피아는 아직까지도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지난 8시즌 동안 그들은 연평균 73.5승을 거두었고, 이는 같은 기간 내셔널리그 15개 팀 중 13위이다(14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73승).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던 해는 2019년으로, 81승 81패를 기록했다. 바꿔 말해, 그들은 8년 동안 5할대 승률도 기록해보지 못했다.

 

2012년의 실패 후, 필리스는 무려 5년간의 리빌딩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8년, 펫 니셱과 토미 헌터를 각각 2년 1625만과 2년 1800만 달러로 영입했고, FA 대어 카를로스 산타나와 제이크 아리에타를 각각 3년 6000만, 3년 7500만 달러 계약에 성공시키며 드디어 대권을 노리는 듯 했으나, 초반 상승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역대 최악의 DRS를 경신하는 등 수비 난조로 결국 DTD를 다시 보여주며 5할 승률 기록조차 실패한다.

 

그리고 2019년, 존 미들턴 구단주는 '조금 멍청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올해 돈을 쓸 겁니다"라고 선언했다. 미들턴은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졌다. 이전 시즌 최고의 활약을 했던 진 세구라와 J.T. 리얼무토를 트레이드로 영입했으며, 무려 4억 300만달러를 지출하며 FA 앤드류 맥커친, 데이빗 로버트슨, 그리고 브라이스 하퍼에게 붉은 유니폼을 입혔다. 그러나 4억 달러도 DTD를 막지는 못했다.

진 세구라는 3년 연속으로 이어오던 3할 타율과 6년 연속 이어오던 20도루 기록을 이어가는데 실패, 부진이라고는 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활약을 보여준다. 1선발 제이크 아리에타는 연봉에 맞지 않는 활약을 이어가다 결국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확정됬고,(8월 14일)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앤드류 맥커친 역시 부상으로 너무 일찍 시즌을 마감한다.(6월 4일) 로버트슨은 한 술 더 떠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도 못한 채 토미존 수술을 받으며 2020년까지 마운드 복귀 불가가 확정되었다.

결정적으로, 하퍼는 35홈런 110타점을 기록하긴 했으나 .260의 저조한 타율과 178개의 삼진 등으로 역대 최고 규모 계약이라는 수식어에 맞지 않는 활약을 보여준다. 리얼무토를 영입한 외부 영입이 모두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4억 달러 투자로 1승 더 올린 것에 만족해야 하는 시즌을 보냈다.

(아래 링크는 필자가 DTD에 대해 작성한 칼럼으로 통한다)

https://www.goeonair.com/news/article.html?no=13547

 

지난 시즌 초반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올스타까지 거론되었던 잭 애플린은 7월 한 달 동안 평균자책점 11.88로 무너졌고, 연평균 25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아리에타는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빈스 벨라스케스는 4년동안 발전 없이 5선발급의 활약을 해주고 있으며, 아익호프는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었다. 

9년 전 역사상 최강의 선발진을 가지고 있었던 팀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을 정도이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FA 시장에는 게릿 콜-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류현진-잭 휠러 4명의 우수한 선발투수 매물들이 풀렸었다. 야구에 헌신적이며, 막강한 재력을 가진 구단주를 둔 필리스가 이 4명 중 최소 한명을 데려갈 것이라는 의견에 아무도 이견이 없었고, 예상대로 필리스는 좌완 파이어볼러 잭 휠러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유격수 디디 그레고리우스 또한 1400만불의 단년 계약으로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벗기고 붉고 흰 유니폼을 입혔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오프시즌 행보에 물음표를 던지는 팬들이 적지 않다. 스트라스버그급을 데려와도 불안한 선발진에, 류현진과 휠러 두명을 잡은 것도 아니고 통산 44승에 불과한 잭 휠러를 5년 1억1800만 달러라는 거금에 영입한 점, 이미 진 세구라가 버티고 있는 유격수 자리에 디디 그레고리우스까지 영입한 이유 등이 팬들의 의문을 사게 했다. 그러나, 어쩌면 필리스의 프론트진은 표면의 성적과 포지션 그 너머를 보았을 수도 있다.

 

 

먼저 그레고리우스의 경우, 세구라의 2루수 기용이라는 정답이 있다. 세구라는 2016년 시애틀에서 2루수로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며 142경기를 출장했다. 놀랍게도 2016년 세구라의 수비율은 개인 최고 기록인 0.985이며, 실책 역시 개인 통산 유일한 한 자릿수 실책인 9개만을 기록했다. 세구라의 2루수 기용과, 명품 수비를 자랑하는 그레고리우스가 유격수 자리에 서는 것은, 항상 팀의 발목을 잡았던 수비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휠러의 경우, 다른 스포츠-세계에서 가장 큰 돈이 오가는 스포츠의 예시를 들어보겠다. 2017-18 시즌이 종료된 후, 이탈리아 세리에A의 유벤투스 FC는 스페인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로부터 이적료 1억 500만 유로를 지불하며 세계 최고이자, 어쩌면 역대 최고의 공격수일수도 있는 포르투갈의 모 선수(차마 그 선수의 이름을 쓰지 못하겠으니 양해 바란다)를 영입한다. 이 시점으로부터 약 1년 전, 프랑스 리그 앙의 파리 생제르맹은 같은 리그의 AS 모나코로부터 데뷔 2년차의, 통산 44승이 아니라 통산 58경기 출장에 불과한 19살의 킬리안 음바페를 이적료 1억 8000만 유로라는 세계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이적료를 지불하며 데려오게 된다.

 

19-20시즌이 시작되기 전, 지금으로부터 약 7개월 전의 상황이다. 스페인 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는 같은 리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최고 스타 월드클래스 공격수 앙투안 그리즈만을 이적료 1억 2000만 유로를 지불하며 영입에 성공한다. 그리즈만을 잃은 아틀레티코는 곧바로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SL 벤피카에게 1억 2700만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하며 1999년생 19살의 주앙 펠릭스를 그리즈만의 대체자로 데려온다.

 

역대 최고의 공격수보다 58경기 출장의 19살 유망주가 7500만 유로의 가치를 더 가지고 있으며, 200여개의 골을 넣은 1991년생의 젊은 슈퍼스타보다 미성년자 딱지를 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1999년생의 유망주가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판단하는 축구계의 기준은 표면의 성적만 본다면 절대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1985년생 35세이다, 아무리 그가 혹독한 자기관리를 이어가더라도 인간의 몸을 가진 이상 에이징 커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기량은 곧 하락한다. 유벤투스가 그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기용할 수 있는 기간은 짧다. 그러나 음바페는 다르다, 남성은 25세까지 성장한다. 음바페는 만 21살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지난 시즌 리그 앙 득점왕을 기록했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음바페는 호날두보다 14살이 어리고, 바꿔 말한다면 파리 생제르맹은 음바페를 최소 14시즌동안 더 기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즈만과 주앙 펠릭스 역시 같은 경우이다. 그리즈만은 1991년생, 야구선수로써는 기량을 꽃피울 나이지만 축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성기가 끝나가는 나이다(물론 제이미 바디로 대표되는 예외도 존재한다). 곧 서른이 되는 그가 아틀레티코에서 넣은 153골을 바르셀로나에서 또 다시 득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것이 펠릭스와 음바페가 높은 가치를 지닌 이유이다. 비록 그들은 경험이 없고 완벽한 검증도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천문학적인 이적료 속에는 이후 수년간 그들이 아틀레티코와 파리에게 바칠 트로피와 골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ATM과 PSG는 그들에게 '투자'한 것이다.

 

 

이제 이 경우를 휠러에게 대입해보자, 잭 휠러는 1990년생, 비록 그리즈만보다 한 살이 더 많지만 야구에서는 늙다고 여기지 않는 나이이다. 또한 2015년 토미 존 수술을 받았던 휠러는 엄격한 투구 제한으로 수술 이후의 소화 이닝이 464이닝, 통산 소화 이닝은 749이닝에 불과하다, 함께 FA 시장에 나온 동갑내기 게릿 콜이 1195이닝을 투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휠러의 어깨 상태가 다른 동년배 투수들에 비해 훨씬 안전하단 것을 알 수 있다.

 

에이징 커브를 피할 가능성도 높다. 너무 무모하고 성급한 비교일수도 있지만, 필자는 잭 휠러를 랜디 존슨과 비교해보고 싶다. 현재 휠러와 나이가 같은 29세 시즌인 1992년, 랜디 존슨은 비록 평균자책점은 조금 상승했지만 제구를 안정시키고 첫 탈삼진왕에 등극하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그해 이전까지 그가 투구했던 이닝은 610.2이닝이었다. 그리고 잭 휠러의 29세 시즌이었던 지난 해, 휠러 역시 역사적인 홈런 풍년 시즌으로 인해 평균자책점은 이전 시즌에 비해 상승했지만(상승한 FIP가 3.48이다) 부상 복귀 시즌 4.17개였던 9이닝당 볼넷을 2.30개까지 끌어내리며 제구를 안정시켰다. 또한 휠러 역시 커리어 최다 이닝과 커리어 최다 탈삼진 기록을 경신했다.

 

우리는 휠러의 미래를 아직 알 수 없지만, 다른 투수들의 과거는 이미 알고 있다. 27살 시즌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돌파한 랜디 존슨은 44세 시즌까지 3점대 방어율-10승-180이닝을 투구했고, 36세-39세 시즌 동안 4년 연속 사이영 상을 휩쓸었으며, 46세 시즌까지 던졌다. (물론 휠러가 이렇게 되리라고 확신하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니다.) 반대로, 20대 초반 무리할 정도로 많은 공을 던졌던 투수들-예를 들어 팀 린스컴의 경우, 단 두 해 만을 불태우고 사라졌다.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30세 시즌인 2016년 몰락했으며, 가장 잘 알려진 예인 클레이튼 커쇼는 구속 저하와 함께 신계에서 인간계로 강등당했다. 따라서 20대 때 무리한 투구를 하지 않았고 철저한 어깨 관리를 받은 잭 휠러라는 투수는 30대 초반에 무너질 확률이 적고, 30대 후반, 어쩌면 40대 초반까지도 구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 점은 이후 수년간 휠러가 필라델피아에게 바칠 트로피와 탈삼진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필라델피아가 잭 휠러에게 '투자'한 이유이다.

 

도날슨이 빠진 애틀랜타, 렌던이 빠진 워싱턴, 빈약한 메츠와 마이애미의 타선을 상대할 휠러의 2020년 팬그래프닷컴 예상 성적은 177이닝 소화, 10승 8패 평균자책점 4.02이다. 연봉에 비해 분명한 부진이며, 전년도에 비해 기량 저하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팬그래프닷컴 예상 성적은 81승 81패로 또 지구 4위이다.

 그러나 예측은 예측일 뿐, 과거의 기록으로 구성된 예측을 미래로 확신하는 것은 무모하다. 다시 부활을 준비하는 아리에타와 맥커친, 언제나 새 시즌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는 세구라와 하퍼가 이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휠러... 사람들은 투수를 일컬어 '쓰면 쓸수록 닳는 분필'이라 표현한다. 잭 휠러라는 분필은 아직 많은 부분이 온전하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라는 칠판 위에 가을을 그려내기 충분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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