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현의 정치/시사 칼럼 8] 빛을 비추는 일.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저술한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을 정의하며 설명하는 단락의 첫 문장이다. 인류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등을 거치면서 점차 이성과 합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아성(牙城)에 부합하지 않는 부류는 철저히 배척하며 타도하고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할 존재로 여겼다. Enlightenment의 어원인 ‘빛을 비추는 일’에서도 알 수 있듯, 인류는 지금까지 우매한 야만인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인지-도구적 합리성의 지배 아래에서 우리는 지금껏 계몽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사명감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등장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바로 좋은 예시이다. 그들은 “계몽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라며 계몽에 대한 완전히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계몽이라는 이름 아래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즉, 계몽이란 주체가 객체를 소유하는 주체 중심적 행위라고 설명할 수 있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계몽이 결국 또 다른 야만적 행위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계몽의 모순적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몽이 모순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계몽의 대상이 되는 신화(주술)도 결국 이전 계몽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신화는 한때 계몽이었으며, 계몽은 다시 신화로 전락한다는 명제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다루는 계몽의 모순, 그 핵심이 되는 전제이다. 이렇듯 계몽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인이 원시 부족민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문명인은 원시 부족민보다 우월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현대 문명인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문명인과 원시 부족민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행위가 인간의 이성과 논리, 합리에 근원을 두고 있는 지의 여부는 인간의 우위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터 윈치에 따르면, 마술이나 주술을 믿는 집단에 대해 과학적 오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들의 삶의 형식 속에서 마술이나 주술이 가지는 의미를 전적으로 오해한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 오류라고 보지만, 실제로 그들의 입장에서 마술과 주술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그것을 과학으로 의도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주술이 과학보다 더 옳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다. 즉, 특정 누군가가 우월하지 않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피터 윈치의 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할 점은 단지 인간의 우위 결정 문제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과학과 신화(주술)의 모순적 상관관계를 바라보도록 한다. 그리고 그 모순적 상관관계는 합리성의 비합리적 토대(유사한 개념으로 계약의 전 계약적 토대가 있다.)에서 발원한다. 합리성을 핵심으로 하는 과학과 계몽은 신화(주술)를 타파하려 하지만, 신화 자체도 이미 계몽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사상과도 맥을 같이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계몽의 잔혹한 현실에 대해 살펴보았다. 야만 상태에서, 두려움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한 계몽이라는 행위가 실은 새로운 야만의 상태라는 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계몽의 변증법」의 결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모방(mimesis)이다. 합리성을 근본으로 계몽해야 한다는 사명의 무한한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이다. 옳음과 그름의 이분법적 판단에서 벗어나 다름을 존중하고, 이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즉, 틀림이 아니라 그저 다를 뿐임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인류를 휘어잡았던 계몽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Max Horkheimer와 Theodor W. Adorno,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 지성사, 2001(1944)

2. 노성숙. (2000). 계몽과 신화의 변증법. 철학연구, 50(), 217-241.

3. 노성숙. (2003). [명저탐방-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계몽과 신화의 변증법: 계몽의 어두운 걸림돌. 철학과 현실, (), 200-212.

4. 이진우. (1999). 인간해방과 계몽의 변증법. 철학연구, 70(), 23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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