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의 인문학 칼럼] 복고 열풍, 무엇이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왔나

레트로, 복고. 2020년 현재 유행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이런 것들이 유행으로 자리 잡은 지는 꽤 오래됐다. 복고가 영향을 미친 분야는 생각보다 꽤 다양하다. 할머니 집에서 본 듯한 유리컵과 같은 다양한 소품부터, 패션, 심지어는 전자기기까지. 이제는 아예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여 ‘뉴트로’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라고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 등록되어 있다. 그럼 뉴트로를 받아들인 분야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는 소품과 인테리어다. 인테리어는 유행에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이다. 그만큼 인테리어가 복고를 흡수한 지는 꽤 오래됐다. 빈티지가 하나의 인테리어 컨셉으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복고 열풍이 더해지면서 더욱 다양해지고 힘을 얻은 것이다. 복고풍 인테리어를 유지하여 그 분위기를 내세우는 파티룸이 있는가 하면 가게 인테리어도 복고로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8~90년대 가구를 사용하고, 옛날 영화 포스터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예 옛날 컵을 구매해서 그 컵에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중고거래에선 90년대 증정용 컵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두 번째는 요식업이다. 옛날 통닭. 옛날 핫도그 등 90년대에 사랑받았던 먹거리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맛집 프로그램에도 하나둘씩 출연하고 있다. 가게 인테리어와 맛 모두 유지하고 있는 옛날 통닭집과 식전 수프와 부어 먹는 소스가 특징인 경양식 돈가스집, 초록색 플라스틱 그릇에 비닐 씌워 주던 학교 앞 떡볶이를 재현한 분식집까지. 이런 시장 흐름을 인식한 이들을 아예 냉동식품으로 출시한 대기업도 있다. 

 

 

세 번째는 음악과 사진이다. 지금 일반적으로는 음악을 들으려면 스트리밍 사이트에 가입하고 돈을 내면 된다. 옛날엔 어떻게 들었을까? 직접 CD를 사서 CD플레이어 혹은 컴퓨터로 듣고 더 옛날엔 LP판을 사서 턴테이블로 들었다. 하지만 요즘 다시 LP가 살아나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태원에 ‘현대카드 바이닐앤플라스틱’이라는 음반 매장을 운영 중이다. 게다가 바로 옆 ‘뮤직 라이브러리’에서는 현대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직접 LP를 들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얼마 전 가수 백예린의 소속사는 그의 앨범 ‘Every letter I sent you’ LP 발매를 발표했는데, 많은 사랑을 받은 앨범이었던 만큼 LP 버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복고 열풍이 불지 않았더라면 CD 음반 시장 실적을 일부 아이돌 팬덤에 떠맡기고 있는 21세기에 LP 앨범 발매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마니아 층 외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던 필름이 되살아나고 있다. DSLR이 아닌 SLR, 즉 수동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SNS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개시하는 연예인들도 다수 있으며 이를 따라 필름카메라를 구매하는 팬들도 있다. 처음엔 각기 다른 이유로 필름카메라에 입문하지만, 푹 빠지게 되는 이유는 다들 비슷한 맥락이다. 필름 특유의 노이즈와 36컷을 모두 찍고 현상할 때까지 사진이 어떻게 찍혔을지 기대하게 되는 그 기분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느림의 미학’을 깨닫는 매개체가 필름카메라가 된 셈이다.

 

 

이 외에도 지난 2월 삼성에서 출시한 ‘갤럭시 Z플립’은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이 인기의 요인 중 하나가 ‘복고 열풍’이라고 생각한다. 위아래로 접히는 형태의 ‘Z플립’이 옛 폴더폰의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 향수와 매력을 느껴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를 구매한 고객 중에는 학창 시절 스티커로 핸드폰을 꾸미던 것처럼 꾸미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는 고객도 있다. 물론 삼성 측에서 유도한 마케팅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토록 사람들이 복고에 빠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행은 그 시대 상황과 소비자들의 니즈(Needs)를 그대로 반영하기 마련이다. 시대가 원하는 영웅상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2020년, 21세기의 특징은 무엇일까? 90년대와 지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 우리가 복고에 빠진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21세기는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들의 시대이다. 90년대에 비해 한국 특유의 따뜻한 정, 그리고 느림의 미학을 느끼긴 어려워졌다는 의미이다. 8-90년대에 비해 현재 우리나라는 분명 엄청나게 성장했고 이와 동시에 빨리빨리의 민족이 되었다. 배달도 빨리빨리, 일도 빨리빨리. 경제적 여유는 생겨났을지 모르지만, 마음의 여유는 오히려 잃어갔던 것이다. 나는 현대인들의 ‘학창 시절, 그리고 어린 시절에 느꼈던 고즈넉함과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지금의 복고 열풍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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