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의 영화 칼럼 I] 하이틴계의 인종차별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하이틴 영화를 통해 인종의 의미를 파악해보자.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같은 대륙일지라도 나라의 위치에 따라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분류 방법이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칼럼은 가장 기본적인 백인, 흑인, 황인으로 사람을 나누었다. 이 분류 방법 자체도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것 또한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칭 권력자들이 나눈 그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넷플릭스, 왓챠 플레이 등의 영상 플랫폼이 이전보다 커지면서 '1020의 전유물' 하이틴 영화가 다시 한 번 부흥을 맞고 있다. 멜론 같은 대형 음악 사이트에 들어가면 '하이틴 여자 주인공 느낌 내기' 부류의 제목을 가진 플레이리스트가 수두룩... 그에 달린 댓글들은 모두 우릴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하다. 난 전학생, 남자친구는 럭비부 주장... 연적은 퀸카. 그 무리에게 괴롭힘당하는 나. 어디서 한 번쯤 봤을 법한 클리셰다. 그런데, 우리 상상 속 '유색인종' 캐릭터는 모두 몇 명일까? 이번 칼럼에서는 20년 간에 걸친 '서양 하이틴 영화'에서 인종의 의미를 찾아보도록 한다. 

 

 90년대 :: 클루리스 (1996)

 

 

 

90년대의 대표적인 하이틴 영화로, 아직도 10대들에게 하이틴의 교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론. 여기서 '백인'을 제외한 캐릭터는 누구? 흑인 두 명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별 존재감 없는 친구, 스테이시 대쉬와 그녀의 남자친구 도날드 파이슨. 주인공의 둘도 없는 친구라기엔 비중도, 주관도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이름뿐인 캐릭터다. 하이틴 영화에서 고작 무늬뿐이지만 어쨌거나 흑인들이 등장했던 시기로, 80년대 영화인 페리스의 해방이나 조찬클럽 등에 비하면 꽤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3년 뒤 발표된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는 멍청한 남자부터 멍청한 여자, 멋있는 남자부터 멋있는 여자 ; 주요인물의 1부터 10가지 모두 백인이다. 그나마 등장하는 언급이라면 타협심 없고 화를 잘 내는 흑인 교사와, '흑인 문화'에 심취한 백인들뿐. 20세기 말이지만 학교에선 흑인 학생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추가로 덧붙이자면, 당연하게도, 아시아인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00년대 :: 퀸카로 살아남는 방법 (2004)

 

 

 

 

많은 이들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로, 캐릭터의 구성 자체는 전형적인 하이틴 형식을 취한다. 퀸카 무리는 무조건 세 명, 주인공은 어벙한 전학생, 최강 여신 한 명을 제외한 둘을 멍청이. 이게 마치 법칙처럼 퍼져있던 모양인지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퀸카 무리는 항상 이 패턴을 유지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아시아인은 초반부터 대규모로 등장한다! "Asian Nerds" 라는 코멘트와 함께 말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흑인 학생들로 이뤄진 그룹을 보고 '멍청한 흑인들' 이란 멘트를 뱉었다고 생각해보라. 아무리 2004년도여도 참으로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시아 찐따들? 뭐, 서양 학교에서는 그렇겠지 - 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비슷한 계열로 '수학에 빠진 아시아 애들' 등의 고정화된 이미지가 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금발이고 멍청한 미국 여자들' 이라는 개념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참 평면적이고 단편적인 캐릭터 구성일 뿐 아니라, 관객의 질타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틀을 깨기 위한 영화가 대체 몇 편이나 나왔던가?

 

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들의 무지를 나타내기 위해 다른 국가에서 온 이들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도 않고 내뱉는 장면이 빈번하다. 이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요소인데, 예시로 '지랄발광 17세' (2014) 에서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무심한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한국계 설정을 가진 헤이든 제토에게 편견 어린 말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이후에 곧바로 사과하는 것도 헤일리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사과했으니 된 거 아니냐고? 글쎄, 이런 멘트들이 백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고작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해도 되는 말이던가?

 

10년대 :: 리얼리티 하이 (2017)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018)

 

 

 

  

혁명적인 두 작품이다. 하나는 두 주연 모두가 흑인, 또 하나는 동양계 여자가 주인공을 맡는다. 역시나 학교 내 '퀸카' 의 존재는 아름다운 백인 배우가 차지하고 있지만, 이건 전혀 문제 삼을 바가 아니지! 먼저, 17년도 작품인 리얼리티 하이부터 살펴보자. 넷플릭스 자체 제작 영화로, 그리 큰 호평을 얻진 못했다. 내용이나 구성 면에서 모두 평범한 하이틴 작품이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인이다.

 

그렇지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킹카 역할을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여자 주인공까지 흑인이라는 포인트. 하이틴 영화에서는 100% 새로운 시도이다. 흑인 배우들이 힙합, 가난을 주제로 한 사랑 이야기에만 등장하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2018년에는 마블의 '블랙 팬서'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백인 히어로가 여럿 몰려와 지구를 구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다음은, 올해 초 속편이 공개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다. 역시나 넷플릭스 자체 제작으로, 21세기를 대표하는 플랫폼답다. (그러나 올해 1월, 넷플릭스 인기작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2가 '김치맛 정액' 논란을 일으킨 걸 보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여자 주인공이 한국계 설정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한국계였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던 요소로, 이 점을 모르고 영화를 봤다면 편견이 들어가지 않은 문화 표현 방식에 많은 한국인이 놀랐을 것이다.

 

또한 영화는 베트남계 배우 라나 콘도르를 선택했는데, 비주류 국가의 배우라는 점이 신선하지만 그만큼 젊은 아시아인들이 가진 기회가 없다는 걸 나타내기도 한다. 조건에 딱 맞는 아시아계 배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어떤 아시아인이 봐도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배우를 고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시선에서 아시아인은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인에게 프랑스 국적이냐 묻는 건 실례지만, 아시아인에게 중국에서 왔냐 물어보는 건 전혀 무례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즌 2에는 서브 남자 주인공으로 흑인 배우가 등장하는데, 이 점 역시나 신선하다. 원작에서는 금발의 백인이었으나 영화로 넘어오며 설정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일각에서는 '화이트 워싱' 의 반대로 '블랙 워싱' 이 일어나는 것을 비판하며 *PC에 잠식된 할리우드라고 말한다. 사실 PC에 잠식됐다는 표현 자체가 꽤나 재미있다. 이런 걸 잠식이라 불러봤자 영화계의 판도는 절대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드디어 화이트 워싱 논란이 줄어들고 있는데 여기서 '오스카까지 PC에 물들었어.' 식으로 말하는 건, 앞으로도 영원히 - 모든 유색인종의 기회를 뻇는 것과 마찬가지다.

 

* PC : Political Correct ; 정치적 올바름. 주로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

 

우린 아시아인으로서, 그리고 서열 하위권에 속해있는 곳에 사는 사람으로서 단순 오락용인 이런 '하이틴 영화'에도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인종차별은 오랜 시간 지속된 불평등이다. 부조리가 고착된 채로 오랜 시간 계속된다면 사람들은 쉽게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불편한 반응을 보이지만, 이젠 알아야 할 시간이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사람이 많은 대륙이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앵글로 아메리카와 유럽으로 이민을 간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립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아시아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걸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또한, 한정된 역할로만 소비되는 것도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서양 매체에서 소비되는 중국이나 일본, 인도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 시대에 2%쯤 뒤떨어진 초라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 등장하거나 (한국에서 대히트를 쳤던 '500일의 썸머' 에서도 이런 식의 장면이 나온다.) 무조건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가? 서양인들이 아시아 인물에 갖고있는 이미지를 그냥 거대한 나라에 모두 때려넣은 결과물이다. 객관적으로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문화 시장을 꽉 잡고 있었고 앞으로도 큰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단순히 그 나라에서 만든 영화이니 상관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들은 하이틴 문화가 자국의 10대 뿐 아니라 온 대륙의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이상, 가장 다인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보수적 플롯을 유지해온 하이틴 영화계의 20년을 바라본 글이었다.  가장 단순한 미디어일수록 그 사회의 기본적 인식을 드러내는 법이다. 우리는 아시아 10대만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 윗 사진들의 모든 출처는 '네이버 영화' 이며, 영화 포스터 / 스틸컷은 비평을 목적으로 할 시 무료로 사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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