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련진의 복지 칼럼] 우리는 정말 장애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은 거의 매해 마다 장애 이해 교육, 장애 인식 개선 교육 등 장애와 관련된 교육을 꾸준히 받는다. 최근에도 위와 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이때 받은 신선한 충격이 기억에 남는다. 수없이 받아온 장애인식 교육들은 늘 사회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이해와 존중 등 그들을 ‘항상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취급했었다. 그런데 최근 받게 된 교육에서는 내 또래의 장애인들과 그들도 나와 같은 학생임을 더욱 강조했다. 처음으로 장애인들이 도움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학생으로 인식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 장애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는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애초에 사회는 그들을 동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의 구성인 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개인적인 일은 스스로 해결하기 원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와 같이 입시, 취업, 대인관계를 고민하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중·장년층은 청소년기부터 지속적인 이해 교육을 받지 못했고, 청소년과 청년층은 성숙하지 못한, 부족한 점이 있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그들을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하며 공존할 수 없는 사회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표면적인 개념을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익숙해질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일상을 되돌아보자. 하루에 장애인을 마주친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그들은 자신을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로부터 숨어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그들이 생소해지고, 그들을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이 하는 장애 교육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장애 교육, 일반 교실과 분리되어있는 장애인 특수학급이 아닌 그들도 구성원이 되는 학급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청소년기 장애 교육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 장애인을 보다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교육이라 느끼기보다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차별적 시선을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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