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중의 영화 칼럼] 참혹한 전장, 그 지옥의 장소가 끝내 남기는 것.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군 병사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에게 함정에 빠진 영국군 부대의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 중지 명령이 담긴 전갈을 전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들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적진을 뚫고 전쟁터 한복판에서 사투를 이어간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소재를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다루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무거운 소재를 2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담아내는 것도, 이러한 소재로 관객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기도 절대 쉽지 않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 나 ‘덩케르크(크리스토퍼 놀란)’ 와 같은 성공 사례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와 같은 작품들은 특색이 뚜렷할뿐더러 이 영화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베낀 영화’라는 관객들의 질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샘 멘데스 감독은 여러 수많은 전쟁 영화의 뛰어난 부분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한 한편 영화 전체에 새로운 형식을 더하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1917은 21세기 가장 뛰어난 전쟁 영화 중 한편으로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1917의 기술적 부문은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커다란 범주를 이끄는 중심인 듯 혁신적이며 완성도가 높다. 1시간 59분이라는 영화의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를 끊거나 편집하지 않고 (실제로는 편집 점을 가려 여러 번 편집해 촬영하긴 했지만) 하나의 쇼트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원 컨티뉴어스 샷’ 촬영기법을 통해 이 영화는 관객들을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 한복판에 놓이게 한다. 그저 시각적으로, 오로지 촬영의 완성도만 놓고 봐도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영화적 체험의 정도가 짙고 마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 정도의 몰입도는 영화가 지니는 관객들과의 ‘어쩔 수 없는 영상 매체로서의 공감’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영화 속 촬영은 관객들에게 단순히 외형적인 공감과 체험만을 선사하는 것이 아닌 정서적인 깊은 여운을 남기는데 크게 이바지하기도 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 스코필드에게서 거의 눈을 떼지 않는다. 폭발 모습이 아닌 폭발을 보고 무서워하는 주인공의 표정을 담는다. 참혹한 전장의 모습이 아닌 그 참혹함을 보고 놀라는 주인공의 리액션을 담는다. 이러한 촬영은 119분 동안 관객들을 주인공에게 충분히 이입시키고 또 동화시킨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무렵, 주인공의 여정이 끝날 무렵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정서를 관객들이 충분히 느끼고 공감하게 한다.

 

1917의 탁월함에는 오로지 기술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탁월한 성취에 촬영 못지않은 큰 몫을 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플롯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고군분투라는 간단하고 명확한 플롯은 영화의 기승전결에 전혀 걸림돌을 만들지 않는다. 마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14년 작 ‘그래비티’처럼 1917은 영화의 뛰어난 테크닉을 선보이는데 플롯을 배경으로써 잘 활용한다.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대담하고 단순하지만 묵직한 플롯은 마치 관객들에게 영화를 그저 체험하게 하고 영화 속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1917은 여러 의미에서 대단하고 또 대담한 영화이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능력과 그 지점에서 최상의 촬영을 보여준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 또한 영화 속 ‘예술’ 이 무엇인지를 증명한 샘 멘데스 감독의 연출도 칭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는 뜨겁고도 간절한 감정과 감동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부조리와 비극에 맞선 한 군인의 여정 끝에 남는 감정은 곧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뜻하지 않았던 그의 선발, 예상치 못한 동료의 죽음, 목적지에 도착한 후 참호에서의 질주도, 그의 임무가 일궈낸 성과도 마침내 하나의 것으로 귀결되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결국, 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동의 전신은 결국 한 인간이 내딛는 발자국의 간절함과 그 후 밀려오는 무엇인지 모를 정서이자 감정이다.

 

1917은 온몸으로 체험하게 하고 가슴으로 깊이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찬사에도, 후대에 더 훌륭한 전쟁 영화가 우릴 맞이해도, 이 영화가 일궈낸 그 탁월한 성취와 영화적 논제에 대한 흥미로운 해답은 여전히 그 시대를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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