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빈의 영화 칼럼]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을 맞으니 유독 국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 중, 6월 민주항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거짓으로 가득 찬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떠오른다. 그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처럼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6월 민주항쟁을 기리며 여러분에게 상징성이 강한 강렬한 단편영화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를 소개하고 싶다.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는 6월 민주항쟁 당시 부패한 지배집단에 의해 무력으로 고통당하고 고문당하던 젊은 청년에 대한 영화이다. 내내 진실을 울부짖으며, 제목과 같이 “은폐되고 있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영화는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 십자가로 시작한다. 그리고 물속에서 들리는, 웅웅거리는 음성으로 성경 말씀이 들려온다. 막혀있는 듯 울림 섞인 음성에 의해 영상이 더욱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잠기고 있는 십자가’와 ‘진실’이 관계를 이루는 이유 중 하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은폐되어가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게 된 계기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있다. 게다가 십자가는 가톨릭교에서 가장 숭고하게 여겨지는 도구로써, 많은 사람이 이 앞에 무릎을 꿇고 죄와 진실을 고백한다. 십자가는 ‘진실’과 ‘진리’를 상징하는 그 자체로 여겨진다. 영화는 이런 십자가가 가라앉고 있는 이미지와 함께 시작된다.

 

또한 ‘물’이라는 요소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이 청년이 당하던 물고문이 연상된다. 물은 투명하다는 성질이 있다. 그렇다면 속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정직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십자가의 형체는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앉을수록 왜곡된다. 그리고 깊게 가라앉아 더는 윤곽마저 흐릿해진다. 분명 투명한 물이지만 진실을 엄폐해버리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이어 등장한다. 의사가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상처를 꿰매고 있다. 이것마저 무언가를 봉합하고 잠그는 행위이다. 이후 “진실을 알지 못하느니 죽는 편이 낫지요"라는 의사의 대사와 함께 환자는 죽게 된다. 심지어 유족을 맡은 배우들은 이후에 나올, 고문하는 경찰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들이 청년을 고문하며 무자비하게 고통을 행사하는데 이와 모순되게도 병원에서는 같은 이들이 울부짖고 있다. 진실을 가둬두는 이들은 결국 죽음에 이르리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법정이 배경이 된다. 이 공간은 세상 그 어디에서보다 진실되고 참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청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실만을 말하겠다며 선서한다. 자신의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 끈질기게 선서하는데 이후에 나올 형사가 판사역으로 나오며 그를 끝까지 저지한다.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한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듯,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해야 할 판사는 왜 그렇게까지 매섭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증인을 가로막는 것일까. 같은 인물이 연기를 하는 형사와 판사 모두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 컷이 전개되며 중간중간에 푸른빛의 버드아이샷과 웜즈아이샷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잠깐씩 등장하는 이 컷은 CCTV화면 같기도 하여 청년을 감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전지전능한 절대자의 시선 같기도 하여 모든 진리를 아는 상태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교회가 배경이 된다. 이 장소 또한 가장 순결하고 진실되어야 할 장소이다. 다시 한번 커다란 십자가가 목사님역을 맡은 형사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진리만을 전하며 정직해야하는 목사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진실을 말하겠다는 청년을 외면한다. 누구보다 정직해야 할 목사님이 왜 이 상황을 불쾌해할까. 판사가 진실을 외면하듯이, 국민을 위해 조직된 경찰이 무고한 청년을 괴롭히듯이 말이다. 같은 사람이 판사와 목사, 형사를 연기하며 이 모순이 정형화되고 있다. 청년은 진실을 토해내겠다며 목사에게 물을 토해낸다. 물고문으로 고통받던 청년이 가쁜 숨과 함께 물을 토해내는 장면이 연상된다. 물은 진실을 상징하기도 하며 청년이 겪은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고통을 그대로 다시 경찰들에게 토해내고 있다. 청년이 온몸으로 토해내고 싶어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죄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토해내는 것일 수 있다. 권력을 위해 계속하여 국민을 속여대는 정부에 대한 진실을 토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청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물이 교회에 한가득 차오른다. 사람들이 모두 잠길 정도로 말이다. 몇 명의 사람들이 이 진실의 물 안에 잠기어 목숨을 잃게 될까. 6월 민주항쟁의 치열한 과정 중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게 되신 분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커다란 십자가마저 기우뚱하더니 물속으로 떨어진다.

 

바로 다음 컷에서는, 첫 씬에서 나왔던 작은 십자가가 물 위로 건져 올려진다. 그렇게 진실은 끝끝내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이다. 영화 속 배경은 고문실로 종착한다. 이 청년은 경찰에게 붙잡혀 물고문까지 당하며 취조를 받고 있다. 물과 대조되게 불순물이 섞여 있는, 탁한 커피를 형사들이 홀짝인다. 색이 섞인 커피는 내막이 제대로 비추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실체는 커피와 비슷하다. 그 잔인한 장면은 영화 프레임 안에 CCTV 화면 프레임으로 보인다. 액자식 구성 속 간접적으로 보이는 그 화면을 감상하고 있으면, 그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찜찜하다.

 

이 영화는 서사가 이어진다기보다 상징이 뚜렷한 씬들이 나열되어있다. 각각 다른 장소들과 다른 역들로 말이다. 상징적으로 비유되고 있는 씬들이 우선으로 보이고 그 이후에 실상이 드러난다. 이 표현법은 성경 속 예수님의 말하기 형식과 같다. 예수가 진리를 전할 때에는 그에 맞는 비유를 통하여 민중들을 깨우치게 하곤 하였다. 이 영화 또한 연출자가 본인은 이미 모든 것을 통달하고 있는 절대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구성하여, 관객들이 진실을 깨우치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출자는 이토록 강경하게 우리가 진실을 마주하기를 외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탁하며 거짓과 눈속임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지배집단에 의해 겉으로 보이는 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고 불의와 맞서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를 통해, 글을 통해, 그림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통해, 또한 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진실이 묻히고 가려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아우성쳐야 한다. 언제나 악한 거대 무리가 존재하더라도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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