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휘의 영화 칼럼] 평범한 소녀가 특별함을 꿈 꾼다면 일어나는 일

영화 <레이디 버드>가 들려주는 우리의 성장기

 

"이름이 뭐야?"

"난 크리스틴."

"고향은?"

"새크라멘토."

 

지금부터 소개할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이 대사가 마음 깊이 와닿을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특별해지고 싶은 천방지축 17세 소녀 크리스틴, 아니 레이디 버드의 이야기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전업주부인 엄마와 실직 위기에 처한 아빠, 그리고 마트 직원 양 오빠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17세 소녀이다. 레이디 버드는 이런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특별함을 누리고 싶었고 자신의 이름마저 너무나 흔한 크리스틴이 아닌 레이디 버드라 칭하고 싶어 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고 특별해지고픈 17세 소녀. 이 소녀의 성장기는 지금 우리가 흔히 겪는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레이디 버드는 친구 줄리와 함께 학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난 잘생긴 친구 대니와 이성 교제를 시작한다.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성관계에 관심을 갖기도 하며 그 나이에 누구나 겪는 다사다난한일들을 거쳐 온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의 사춘기 속에서 그가 겪는 가장 큰 고난은  엄마와의 갈등이라는 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모두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모님과 싸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너무 밉기도 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 일쑤이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본명 크리스틴을 언젠가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마음대로 레이디 버드라 바꿔 부르곤 한다. 그의 엄마 매리언은 이런 레이디 버드를 못마땅했지만 결국 체념을 한 듯 매리언 또한 그를 크리스틴이 아닌 레이디 버드라 정정하여 불러주기도 한다. 이러한 엄마의 노력 속에서도 한참 철이 없는 레이디 버드는 고향 새크라멘토가 자신을 담기엔 너무 작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뉴욕의 대학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레이디 버드의 집안은 뉴욕 대학 지원 학비를 마련하기 힘들 정도의 형편이었고 레이디 버드 또한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엄마 몰래 아빠가 마련해 준 지원금을 받아 뉴욕 대학에 지원하게 된다. 여기서 레이디 버드는 시시콜콜한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꾸리고 싶어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게 된다.

 

결국 엄마 매리언에게 모든 사실이 들통나게 돼버리고 그는 레이디 버드를 더욱더 쌀쌀맞게 대한다. 용서를 구하려는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매리언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다.엄마는 날 좋아해?” 이런 레이디 버드에 매리언은 자신의 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에게 좋아함의 의미는 단지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모습이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레이디 버드의 존재를 부정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날 좋아해주면 좋겠어."  엄마와의 팽팽한 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거치고 드디어 뉴욕 대학에 가게 된 레이디 버드. 출국날까지도 따스한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 모녀를 뒤로 아빠가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의 편지 한 통을 건넨다. 편지의 상단에는 'Dear.Lady Bird (친애하는 레이디 버드에게)'  라고 적혀 있다.이 편지는 엄마가 끝내 크리스틴이 아닌 레이디 버드의 존재를 받아 들이게 됨을 의미하고 있다. 레이디 버드는 엄마의 차를 운전해 뉴욕 도시 위를 달리며 엄마가 자신에게 향한 마음은 증오가 아닌 애정의 표본이었음을 깨닫고 18살이 된 레이디 버드는 이제 더 자신의 이름과 고향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는 이렇게 억압되어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깨우쳐 나간다. 그리고 뉴욕의 첫날 밤 파티에서 만난 친구와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레이디 버드는 이렇게 말을 한다.

 

"이름이 뭐야?"

"난 크리스틴."

"고향은?"

"새크라멘토."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은 두 가지라 볼 수 있다. 성장에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과 익숙해져버린 소중함의 가치를 되새겨보아야 한다는 것. 사춘기에 흔히 일어나게 되는 여러 갈등과 생각들, 그리고 남들과 가질 수 없는 엄마와 딸만의 애증 관계와 유대감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말이다. 미국 배우 그레타 거윅이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 영화는 실제 감독의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어느 시골 마을에 사는 한 소녀가 성장기를 지나며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10대’라는 아직 미숙하고 어설픈 나이에 느끼게 되는 이상한 감정들을 다양한 상황 안에서 묘사해냈다.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냐. 진실한 것이 중요한 거야."  <레이디 버드> 中

우리는 모두 소중한 것들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익숙해진 대상을 보듬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혐오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소중함에 대해 레이디 버드는 그 존재를 일깨워 준다. 굳이 새크라멘토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도 일어나는 10대들의 작은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던가. 이 세상의 모든 레이디 버드에 이 영화를 바친다. 스스로가 너무 유별나 보이고 어리석게만 느껴질지 몰라도 당신은 이미 청춘이란 이름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레이디 버드, 아니 크리스틴이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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