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의 심리 칼럼] 공감과 공존하기

신파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혹은 타인이 하품하는 것을 본 후 자신도 하품한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위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필자 역시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상황 또는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렇듯 특정 감정은 나와 타인 사이 형성되는 관계의 깊이를 떠나 한 상황이나 사건 속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이성과 논리보다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경험에 의해 감정이 외부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정서에 이입하여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공감의 시작이다. 하나의 생리현상처럼 본능의 영역에서 시작되는 공감은 거울 뉴런이라는 과학이론과 상관관계에 놓여있다.

 

 

 

거울 뉴런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그대로 모방하여 타인의 상황에 마치 자신이 상대방이 된 것 마냥 반응한다는 개념이다. 이탈리아 심리학자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거울 뉴런이론을 가시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실험내용은 간단하다. 원숭이에게 다양한 동작을 시켜보면서 그 동작을 할 때 관련된 뇌의 뉴런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실험 중 어느 날 리촐라티 교수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연구원을 본 원숭이가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듯한 동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움직일 때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뉴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용: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729&cid=59039&categoryId=59044)

 

이러한 공감 이론은 신생아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신생아들은 다른 신생아의 울음에 반응해서 따라 울지만, 자신의 울음에는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실제 듀크대 실험에서 신생 아성 반응울음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인용: https://blog.naver.com/adonis5050/221216752629

 

위 실험들은 모방을 통해 전이된 감정을 함께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모두 신경세포에 기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공감이라는 말의 자체적 개념은 아주 본질적이며 인간의 의지개입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재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도 증명 가능한 공감이 21세기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인간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인 관점으로 해석할 때 공감은 우리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분야이다. 또 공감이 하나의 능력으로 범주화되고 있는 최근 경향만 살펴봐도 타인의 기분을 같이 느끼고 이해하는 힘이 사회가 추구하는 주안점이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의 역할과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다수 사람이 정확한 공감 자세를 간과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아픔과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많은 사람은 반사적으로 ‘힘내’라는 말로 위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후 사정없이 힘내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예컨대 공감이라는 것은 상호작용하는 행동으로 상대의 상황을 단방향으로 추론하는 태도를 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확한 공감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1. 질문하여 타인의 상황을 천천히 파악하기

문제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알고 이해해야 정확한 공감도 가능하다. 이때 구체적인 질문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2. ‘그 사람의 말이 옳다’라는 확신을 주기

타인의 말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상대에게 스스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필자가 위에 제시한 두 단계의 과정만 거쳐도 상대의 입장에서 수준 높은 공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경청이다. 자기중심적 커뮤니케이션이 확산하고 있는 오늘날은 듣기가 결여된 소통이 늘어나고 있다. 공감에서 경청은 상대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의 유무를 판가름할 만큼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존중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선 경청 후 공감’의 과정을 꼭 명심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감은 개인과 개인의 상황에서도 작용하지만, 사회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SNS 댓글이나 블로그 글, 심지어는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공감의 징표인 ‘좋아요’와 하트를 누를 수 있게 되어있다. 이것은 개개인의 공감이 모여 이슈와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한 사회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 공감의 힘은 엄청나다.

 


현대사회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 역시 공감에 원인을 둔다. 실제로 사이코패스의 뇌와 일반인의 뇌는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기능성 자기공명 뇌영상기법을 활용해 사이코패스의 뇌는 일반인의 뇌와 달리 연민, 슬픔 등과 같은 감정적 자극을 일으키는 뇌의 앞부분이 활성화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다.(참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557634&memberNo=24803186&vType=VERTICAL) 근래 화두가 되는 묻지 마 폭행 역시 결국은 공감 능력 결여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후천적 노력을 통해 공감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

 

공감 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는 다독이 대표적이다. 독서를 통해 간접경험을 많이 쌓아야 감정적 이해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의 소통을 많이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접적으로 많은 사람과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감정의 공유가 활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력이 요구될 만큼 공감은 나와 타인, 공동체의 가치를 높여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에 능수능란한 인공지능이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것도 바로 공감이라고 한다. 설령 차후에 공감하는 로봇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학습된 공감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과정이다. 요즘엔 공감게임, 공감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감을 활용한 사례가 늘고 있다. 공감의 기능과 역할이 현대로 올수록 더 절실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의 대체가 불가능한 감정적 배려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 아닐까. 현대인들이 공감의 역할과 올바른 공감 자세를 터득하여 미래사회의 또 다른 혁신을 이룰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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