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의 독서 칼럼] '모두'라는 관계를 아십니까?

 

'체스처럼 경계가 뚜렷한 게 또 있을까.' 소설을 읽고 계속 맴돈 생각이다. 각자의 자리를 확실한 경계선으로 나눈 체스판, 말을 잡기 위해 옆자리로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바로 옆자리로라도 쉽게 이동할 수 없는 게 체스다. 「체스의 모든 것」은 선배, 국화, 나, 세 인물 사이의 불분명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다루고 있다. 선배와 국화의 관계 속에서 철저한 제삼자이자 ‘나’가 화자로서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선배를 짝사랑하는 ‘나’의 시점에서 소설을 읽으니 세 사람의 관계야말로 체스판 위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체스를 할 줄 모르는 ‘나’가 자리를 비켜주면서 “그런데 그렇게 옆자리로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소외 상태가 된다는 것을 엉덩이를 들어 옮기는 순간 느꼈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물리적으로 옆자리로 가는 건 쉬워 보이지만 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정신적인 옆자리가 되어주기까지는 절대 쉽지 않다. 규칙을 확실히 정하지 않은 채로 선배와 국화의 체스는 “결국 의지도 우연도 아닌 충동이 게임을 출발시켰고 그렇게 체스가 시작됐다.”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체스의 규칙을 두고 의견 차이로 대립한 이후로 선배와 국화는 자주 만난다. 체스는 두 사람의 만남에 있어 점점 핑계가 되어갔고, 실제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가 제시하는 몇 가지 추측과 암시를 통해 짐작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짐작만 해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보이지 않아서 당사자들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선배와 국화가 서로의 마음을 ‘체스’나 ‘감자튀김’처럼 형태가 분명한 것들로 저울질해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스를 두고 둘은 의견을 쉽게 좁힐 수 없었다. 하지만 감자튀김을 두고 선배는 끝내 “미안하다, 감자를 많이 먹어서.”라고 말했고 국화가 사과하는 선배를 뿌리치며 나가면서 상황은 일단락된다. 역시 짐작일 뿐이지만, 국화를 향한 선배의 마음은 먹어 치웠던 감자튀김만큼이라도 국화보다는 더 크지 않았을까.

 

 

중간중간 체념한 듯 보이는 ‘나’가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휴대폰 선물도 거절하고, 선배를 민망하게 할 충고도 서슴지 않게 하는 국화를 선배는 참아낸다. 그런 선배를 두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이란 안 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이후 졸업하고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보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만난 선배는 이혼한 상태였다. 그런 선배를 두고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척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원수였다.”라고 한다. ‘나’가 아직 선배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어딘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슬프기도 했다. 선배는 ‘나’를 다시 만나서도 체스가 두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어서 그런다고 변명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제목은 체스의 ‘모든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것이라는 말이 무서워졌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모든 것이다’라고 할 때의 ‘전부’와 ‘모든’과 같은 수식은 불특정 다수의 것을 뭉뚱그려 지칭해버린다. 선배와 나는 술을 마시다가 취해서 말들을 되풀이하게 되는데, 결국 체스였다가 체스가 아닌 것이 되었다가 결국 그것이 무엇인지를 따질 필요도 없는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나’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이 아니었다고는.” 사실 이 문장은 앞 문장과의 연결에 있어서 어색하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해석하기 나름의 문장이다. 필자는 이렇게 이해했다. 무엇인지 따질 필요도 없는 아무런 이야기, 뭉뚱그린 ‘모든’ 이야기가 선배와 ‘나’ 사이의 모든 것이었다. 그게 전부여서, 말을 멈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관계를 지칭하는 데 있어서 ‘모두’라는 말이 나누는 경계는 사실 모호한 것 같지만 가장 뚜렷하다고 말하고 싶다. 뭉뚱그려 ‘모두’로 묶이는 관계, 그런 관계는 슬프게도 당사자도 모르고, 지칭하는 사람도 모르는 채로 ‘모두’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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