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은지의 독서 칼럼]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인가, 유토피아인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는 헨리 포드가 태어난 해인 1863년을 인류의 새 기원으로 삼은 가상의 미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의 배경은 포드 기원 632년(서기 2496년)의 영국이고, 소설 속의 세계는 하나의 통일된 정부의 통제하에 있으며 모든 것이 포드주의에 따라 자동 생산된다. (인용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멋진_신세계) 책의 저자인 헉슬리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여 과학 기술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을 요구하였다.

 

이런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나는 '멋진 신세계'가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했다. 멋진 신세계라고 부르는 이 지독히 공동체주의적인 사회는 사람을 위한 사회가 아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그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부품에 불과하다. 태어나면서 그 쓰임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쾌락과 향락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디스토피아에서 사람들은 행복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이곳의 사람들은 입을 모아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행복이란 소마라는 마약과도 같은 약물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을, 꿈을 쫓지 않는다. 죽음과 고통에 대해서도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회가 정한 대로 이루어지고, 규격화된 일에만 열중하고 사회에 순응하면 사회로부터 모든 것을 보장받는다. 멋진 신세계에서 개인은 태생부터 그 사회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나는 무엇의 수단으로 전락한 인간, 즉 자신을 둘러싼 것에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탐구해나가는 본성을 거세당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을 벌고 필요한 것을 누리고 소비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행복을 이룩할 수 없다. 나는 행복을 이룩하는 데 있어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가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유흥과 쾌락과 같은 물질적인 것에 눈이 가려 이를 행복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행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서부터 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유행에 쉽게 휩쓸리고, 타인의 것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음식 문화와 의복 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예로 들 수 있다. 세계화가 거듭되면서 이러한 획일화는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멋진 신세계로 향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처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갖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를 경계하고 유행을 쫓기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에 대해 생각하며 진정한 행복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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