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이의 독서 칼럼] 나의 '독서에 대하여'

마음을 풀어내는 글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나의 많은 가치관이 변화하고 성격이 급격히 달라진 그 시기는 과도기였다. 그전까지 책이라면 스스로 펼치려고 하지 않았다. 공부나 독서나 모두 흥미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그때, 나에게 한 권의 책이 주어졌다. 그 책은 아주 두꺼운 소설이었다. 무슨 재미가 있을지 누워서 펄럭펄럭 책장을 넘기는데, 묘한 매력이 있었다. 빠르진 않지만 느린 속도로 천천히 글을 읽었고, 문장 하나하나를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깨달았다. 책은 재미있다. 책은 감동적이다. 책의 제목에 적힌 '기적'이 나에게 일어났다. 이후, 나는 책을, 특히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게 된 이후에는 스스로 책을 찾는 습관을 가지려고 했다. 처음에는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바람직한 독자가 되고 싶었으나, 사회문제나 과학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다룬 책들은 너무 어렵고 난해했다. 그대로 포기한 나는 소설을 두루 읽는 일명 '편식 독자'가 되었다. 소설은 신기했다. 분명 허구의 이야기라는데, 세상 어딘가에서 진짜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마음대로 등장인물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면서 나의 생각을 이리저리 바꾸기도 했다. 그렇듯 힘든 시기에 찾아왔던 소설은 강한 힘을 발휘하였다. 현실의 우울함을 피해 나를 치유해주는 안식처와 같았다. 객관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배움이 있다면, 소설에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우고, 이따금 비판하며 나와 다르게 상상하는 '사람'을 위한 공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독서량은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국어 모의고사를 치르기에는 독해력이 부족했다. 그리하여 독서 문제집 한 권을 구매하였고, 혼자 문제를 풀던 때의 일이었다. 지문의 제목은 「독서에 대하여」였고, 저자는 헤르만 헤세였다. 그는 정신을 완화시키기 위한 독서는 없으며, 오히려 정신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독서라고 말했다. 또 독서의 질보다는 한 권 한 권 책을 읽으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가치있는 독서라고 하였다. 전반적인 글의 내용에 나는 공감했다. 그러나 마지막 단락에 눈길이 머물렀다. "우리는 자신과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도 안 된다"라고 말하는 그의 글을 보며, 독서를 시작했던 지난 날부터 지문을 읽고 있는 날의 나까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울적한 기분을 환하게 바꿔주었던 독서를 안식처라고 생각했던 나는, 잘못되었던 것일까. 당시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현실을 피하려고 했었다. 가만히 책을 읽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건드리는 일이 없었고, 누군가 나를 건드리는 일이 줄어들면 나를 상처입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는 재미있고 자신이 치유된다고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는 현실의 도피처로 책을 선택했다는 점이 걸렸다. 나는 결국 책이 좋다고 말하면서 현실을 피하려고 했던 도망자였다. 그런 나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떠할까. 예전만큼의 무기력함은 이제 없다. 오히려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말해주고 싶다. 물론 힘든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즐거운 일은 즐겁다. 다시 찾은 활력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 걸까? 이제 현실을 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정말, 정말 읽고 싶어서 읽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독서를 할 때 가졌던 예전의 마음을 저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부를 해오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중학생 때보다 조금 더 깊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아주 현실의 도피처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가끔 학업 스트레스가 나를 짓눌러 버릴듯 막대해질 때, 나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싶어진다. 잠깐의 휴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헤르멘 헤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그의 말,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그 말을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나와 같은 사람은, 책을 통해 삶을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그리하여 살아가는 용기를 배운다. 그는 또한 성숙한 삶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성찰을 통한 나의 성숙한 삶을 위해서, 잠시 일상을 접어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현실을 그 순간만이라도 잊고, 정신적인 고통을 해소하여 다시 안정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면 괜찮지 않을까.

 

아마 그의 말은 이를 테면 삶의 악몽과 같은 순간을 잊기 위해 방에 틀어 박혀 책만 주구장창 읽는 사람을 이르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다. 과하지 않다면 책을 통해 일상을 잠시나마 잊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과유불급이라는 한자성어를 생각하자. 무엇이든 정도가 심하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다.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하여,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마주하기 위하여, 독서가 있는 것 같다. 괴로울 때 술을 마시는 어른처럼, 괴로울 때 책을 찾는 사람은 다시 살아가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것이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