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서의 사회 칼럼] 대한민국, 제대로 된 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라고 일컫는 것들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유난히 이런 민감한 소재들이 많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거쳐 특정 주제에 대한 찬반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서로 타협점이란 없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페미니즘 등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이슈몰이를 하고 있는 화제들부터, 세세한 것 하나하나에서도 타협을 하지 못한다.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라는 책에서 간극 본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단히 말해 세상을 양 극단으로만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용어이다. 경제 등의 영역에서 세계가 양 극단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차이점보다는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극단보다는 겹치는 많은 부분, 공통점에 집중할 때 사회는 다르게 보인다. (참고: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김영사, 2019) 물론 이 책에서는 세계의 가난, 교육 등 기본적인 수치에 대해 ‘간극 본능’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만, 이는 각 국가와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양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입장들도 자세히 보면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보편적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 사회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보면, 이런 타협의 가능성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듯하다. 포털사이트 댓글을 보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양편은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바쁘고 타협을 하려는 노력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언론사들도 각각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로에게 여론의 비난을 떠넘기려는 의도를 다분히 포함한 기사를 내보낸다. 일상생활로 눈을 돌려보면 물론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개인과 단체도 많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민감한’ 소재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피하려 하고, 침묵한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본래 민주주의 사회라면,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양편 사이에서 활발한 토론이 펼쳐지며, 적극적으로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이상적인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끊임없이 언쟁을 주고받지만, 이상적으로 합의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로 넘어와서 보면, 페미니즘의 사례만큼 이 문제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또 없다. 근래의 미투 운동 등으로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성의 인권과 양성평등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터넷의 대중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을 제시했으나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합의에 이르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은 악화되었고,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혐오, 여성 중심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우월주의와 남성 혐오의 목소리만을 내며 페미니즘은 어느새 ‘양 극단’의 이슈가 되었다. 이 양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두 입장을 중재하는 것은 또 아니다. 쉽게 자신의 의견을 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민감한 소재라고 여기며 언급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민감한 소재는 이제 ‘불편한 주제’가 되려 하고 있다. 양 극단에 치우친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단절된다.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은 사회가 존재하는 기반이자 목적이다. 상호 간의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면 서로가 함께하는 공동체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 사회의 양극화, 소통의 단절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화’를 제안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집단 간의 갈등에서, 서로의 입장을 절충하여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민감한 이야기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대화를 거부한다면, 사회는 완전히 분열되고 단절될 것이다.

 

특히 정치 사회적 대화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만 진실이라고 믿고, 다른 입장을 접하더라도 쉽게 ‘거짓’으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대화가 단절된 사회에서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다면, 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상반된 입장 사이에서도 가치관을 공유하고, 극단이라고 믿었던 것들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아낼 수 있다.

 

같은 집단 내에서 입장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반복적인 대화는 충분히 많이 했다. 이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구성원인 다른 누군가와 대화해야 한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도 물론 발생하겠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우선 대화를 시작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대화와 소통의 힘은 강력하다.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기를, 서로에 대한 관용이 일상화된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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