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의 영화 칼럼 IX] 그들이 합쳐지는 그 순간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

결핍이라는 교집합으로 맺어진 관계, 이 둘은 어떻게 하나가 될까?

 

화성에서 태어난 가드너는 NASA에서 진행했던 "화성 이주 프로젝트"의 대표, 사라 엘리엇의 아들이다. 사라는 무중력 공간에서 가드너를 낳다 사망하게 되고,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팀원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을 것이 두려웠던 셰퍼드 박사는 가드너의 존재를 지우고 그를 화성에 숨기고자 한다. 설상가상으로 무중력 상태에서 태어난 가드너는 지구인들과 장기 크기가 달라 지구로 돌아온다면 생존하게 될 확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그는 꼼짝없이 화성에서 16년을 보내게 된다. 함께 거주하는 사라의 팀원들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모른다는 걸 알지만 그는 지구를 동경했기 때문에 몰래 인터넷에 접속해 지구인 친구를 만든다.

 

 

인터넷 친구에게 자신이 화성에 살고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던 가드너는 희소병으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거짓말을 하고, 그의 친구 '툴사'는 반신반의하지만 장단을 맞춰준다. 가드너는 툴사와 영상 통화를 하며 점차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직접 만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화성에 묶여있어야만 하는 현실에 불만을 갖게 된 가드너는 사라의 동료였던 켄드라에게 지구에 가고 싶다는 속마음을 밝히고, 켄드라의 도움을 받아 지구로 떠날 수 있게 된다.
 

 

 

가드너는 마침내 지구에 도착해 툴사와 만나게 됐지만 둘이 헤쳐나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남과는 다른 장기의 크기 때문에 보호 장치가 있는 시설에서 지내야 하지만 툴사를 만나기 위해 치료도 받지 않은 채 도망친 가드너의 몸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악화한다.  또한 여러 번 파양 당한 기억으로 인해 인간에게 회의감을 강하게 느끼는 툴사는 '화성에서 왔다.' 주장하는 가드너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해 큰 실망감을 느낀다. 태어난 행성도, 성격도 너무나도 다른 둘은 시련을 이겨내고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화성'이라는 공간에서 지구인도, 화성인도 아닌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가드너,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꿈꿨지만, 가족들의 무관심과 친구들의 배신으로 인해 홀로 남겨진 툴사는 '결핍'이라는 아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툴사가 감정을 숨긴다면, 가드너는 표현하고, 곤란한 상황이 닥쳐오면 툴사는 도망치지만, 가드너는 배워서 극복하려 한다. 순수함 그 자체인 소년과 이 세상의 모든 밑바닥을 경험한 소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가드너는 끝내 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화성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NASA의 지원 덕분에 이 둘은 일정 기간 화성에, 일정 기간 지구에서 지내게 되며 사랑을 이루게 된다.

 

영화의 소재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가 단지 킬링타임용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설정을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화성인과 지구인이라는 점을 빼고 생각한다면 - 온갖 제약을 떠안은 두 명의 사랑 이야기 아니던가? 오히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랑의 시련을 풀어나갔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아픔과 한계를 느끼게 될 때,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를 보는 건 어떨까.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